암 후유증 다스리는 명상과 춤 '禪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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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면서 두 손을 깍지 끼고 길게 앞으로 내미세요. …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등을 활처럼 휘었다가 다시 엉덩이를 쭉 빼면서 우~하는 소리와 함께 등을 동그랗게 말아보세요…."

지난달 25일 오후 1시 수원 아주대병원 13층 소강당. 10여명의 암환자가 지도교사의 동작에 맞춰 '선무(禪舞)'를 하고 있다. '암환자를 위한 선무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회원들이다.

무아(無我)에 빠진 환자들의 얼굴이 더없이 편안하다. 낮게 흐르는 음악을 제외하곤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공간을 메운다. 춤은 작은 근육의 잠을 깨우는 동작에서 시작해 걷기 명상, 무드라(手印法), 그리고 명상으로 끝났다. 정적이면서 느린 동작으로 구성됐지만 1시간 뒤 환자들의 얼굴엔 땀이 촉촉이 배었다.


두 교수의 합작품=암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에 '선무 치유법'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8월. 10여년간 미국에서 암환자를 돌보던 아주대병원 치료방사선과 전미선 교수가 포천중문의대 보건복지대학원 이선옥 교수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암치료 후 환자들은 몸이 망가진 데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 가정에서의 소외감 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게 되지요. 미국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명상이나 요가.타이치 등을 가르쳐 심신의 안정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돌아와 보니 병원에 치료(curing)기능은 있지만 치유(healing)기능이 없더라고요." 치료는 항암요법이나 외과수술처럼 질병을 제거하는 행위. 반면 치유는 정서적 또는 영적.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암환자에겐 이 두 가지 행위가 충족돼야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는 것. 전교수는 이렇게 암환자의 '삶의 질'을 고민하던 차에 이교수를 만났다고 했다.

이교수는 미국 유학 중이던 1972년 선승인 숭산 스님을 만나 선무(춤을 추며 하는 참선)를 만들고, 이를 치유예술로 끌어올린 인물. 그는 암환자를 위한 선무 치유 프로그램에 네가지 원리를 적용했다.


첫째는 수축과 이완을 통해 몸에 흐르는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 따라서 무드라와 명상을 제외한 모든 동작에는 단전.회음부.항문을 조이고 풀어주는 행위가 반복된다. 둘째는 부처의 손동작인 수인법 3백65가지를 응용했다.

이는 우주의 생명과 인간의 의식이 만나 하나가 되는 절차(梵我一如)다. 셋째는 나선형으로 몸의 근육을 비트는 것. 나선형으로 이뤄진 근육을 빨래를 짜듯 비틀어 스트레칭을 극대화하고 노폐물을 제거한다. 넷째는 명상이다.

참선을 할 때 흔히 화두(話頭)로 삼는 '이 뭐꼬!'를 머릿속에 그리며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을 퇴치한다. 프로그램은 1주일씩 4단계로 이뤄진다.

이선옥 교수는 "다른 치유 무용과 달리 한국 고유의 동작과 호흡법을 응용했기 때문에 몸의 기를 잘 다스리며, 삶을 관조하는 마음가짐도 다르다"고 말했다.

활력을 되찾아준다=경기도 분당에 사는 윤모(61)씨는 매주 두차례 아주대병원을 찾는다. 98년 부신암을 수술한 뒤 만성피로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를 구해준 것이 바로 선무 치유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부신은 아드레날린이라는 교감신경 자극 물질을 분비하는 곳. "항상 땅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 정도로 피곤했지만 선무를 6개월 정도 한 지금 온몸에 생명력이 넘치는 것 같다"고 윤씨는 말했다. 96년 유방암 절제수술을 받은 박모(58.경기도 수원)씨도 선무에 빠져든 지 1년 가까이 된다.

유방암 환자의 경우 수술시 겨드랑이에 있는 림프절을 모두 떼내기 때문에 팔이 붓는 것이 특징. 그는 "선무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피곤이 사라지고, 암 재발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줄었으며, 특히 눈에 띄게 팔의 부기가 빠졌다"고 말했다.

실제 이러한 변화는 임상시험에서 나타난다. 전미선 교수팀(외과 박희붕.예방의학 이은현 교수)이 유방암 치료가 끝난 15명에게 주 2회 1시간씩 선무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 환자들은 신체.정신적 피로가 감소했으며, 피곤.혼란.울화가 줄고 삶의 활력을 되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팔 둘레는 1㎝ 이상 빠져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전교수는 "암환자의 삶의 질은 치료결과와 재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의료기관에선 이들의 신체적.정서적 건강을 되찾아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선무치유 프로그램은 매주 화.목요일 오후 1시에 1시간씩 열리며,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았거나 받고 있는 환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는 무료. 031-219-5884(치료방사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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