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마피아" 최재형 때리던 與, 北원전 문건 공개에 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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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1호기 감사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파일 목록 530개가 공개되자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민주당은 그동안 감사원의 감사를 "정치 감사"로 몰아세우며 최재형 감사원장을 강도높게 비판해왔다. 하지만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감사원의 감사가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 파일 목록 공개가 엎친데 덮친격이 됐다. 야권이 29일 청와대를 거론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이날 당 차원의 아무런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개별 의원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지난 15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모습.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최 원장을 향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감사원이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 하는 것 아니냐”(김남국 의원)고 몰아세웠다. [뉴스1]

지난 15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모습.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최 원장을 향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감사원이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 하는 것 아니냐”(김남국 의원)고 몰아세웠다. [뉴스1]

①반박=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정부가)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는 야권 주장을 “정치 소설의 백미”라 비판하며 “최소한 팩트는 확인하고 말씀하시라”고 말했다.또 윤 의원은 지난해 11월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산업부가 추진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이날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교류 협력사업 어디에서도 북한의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 중 '北 원전건설추진 문건' 관련 파일. 보고서 캡쳐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 중 '北 원전건설추진 문건' 관련 파일. 보고서 캡쳐

②당혹=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소장은 검찰의 주장일 뿐 사실관계가 확인된 게 아니다”면서도 “우리가 언제 당 차원에서 감사원 감사 자체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요컨대 “에너지 전환 정책은 정부 의사 결정의 최상위 의결기구인 국무회의에서 결정된 정책 사안인데, 이를 감사하는 게 월권적 발상이라 비판한 거지, 감사원의 감사 활동 자체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삭제된 문건 중 산업부가 청와대와 논의를 주고받은 정황이 나온 데 대해서도 이 의원은 “우리도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③역공=2주 전인 지난 15일 감사원을 향해 “정치 감사를 즉각 멈추라”는 논평을 냈던 신영대 대변인은 본지 통화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공소장이나 파일 목록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 자체가 검찰이나 감사원 등의 정치적 행위라는 주장이다. 신 대변인은 "지난해 감사원이 국회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했을 때는 삭제 파일 목록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 이를 복구했다며 슬금슬금 흘리고 있다","재판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구체적 혐의가 담긴 검찰 공소장까지 보도됐다"고 주장했다.

④업계 옹호?=지난해 8월 송갑석 의원은 최재형 원장을 향해 “원전 마피아들이 했던 논리와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원장이 원전업계나 '탈 원전'에 반대하는 세력과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 원전 건설과 관련한 정황이 삭제 문건 목록에서 드러나자, 송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원전을 짓는다는 게, 원전 업계 입장에서는 (아예 못 짓는 것보단) 원하는 일 아닌가.”

⑤엇갈림="산업부가 원전 폐쇄 반대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보도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대체로는 “제목만 보고는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시민단체가 경찰에 낸 집회신고서를 산업부가 갖고 있었던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호남 재선)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면서 관련 기관이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호남 초선), “정부가 동향 파악하면 다 사찰인가, 트집에 불과하다”(수도권 중진)는 옹호론도 있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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