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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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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알페스’ 이슈로 아이돌 팬 문화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알페스는 ‘리어 퍼슨 슬래시(Real Person Slash)’의 약자인 RPS를 우리말 발음으로 읽은 것으로 10~20대 아이돌 멤버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은 이야기 또는 그림을 말한다. 스타를 주인공으로 쓰는 ‘팬픽션’이 도를 넘어선 알페스 이슈는 강력한 법적 제재 방법과 함께 건강한 팬 문화를 고민케 한다.

‘일반인 코스프레’의 줄임말인 ‘일코’는 인기 아이돌의 팬이지만 전혀 관심 없는 일반인처럼 지내는 성인들의 태도를 일컫는다.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가 나와도 모르는 척, 휴대폰과 SNS에는 얼굴 사진 대신 꽃·동물·장소 등 ‘찐팬’끼리만 아는 상징물을 올려놓는 식이다. 코스프레는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복장 놀이)의 일본식 약어로,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만화 속 등장인물로 분장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팬심(fan+心)’을 대놓고 드러내는 게 코스프레의 원래 목적인데 ‘일코’는 정반대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서귤 작가의 책 '회사밥맛'에 삽입된 '일반인 코스프레' 이미지. [사진 아르테]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서귤 작가의 책 '회사밥맛'에 삽입된 '일반인 코스프레' 이미지. [사진 아르테]

리얼 오피스라이프를 재기발랄하게 다룬 책 『회사 밥맛』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S부장의 휴대폰 배경화면에 인기 아이돌 D의 사진이 깔린 걸 본 젊은 팀원들은 ‘나잇값 못한다’며 이를 비웃는다. 그날 밤 책 속 주인공은 자신이 실은 아이돌 P의 팬이지만 ‘일코’하고 있다며(그림) 이렇게 고백한다. “무서웠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S부장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게.” 퀸에 열광하는 10대, BTS를 사랑하는 50대. 취향은 나이와 아무 관계도 없다.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