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부작용이 암보다 무섭나요

중앙일보

입력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은막의 여왕 오드리 헵번에게 갑자기 복통이 시작된 것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구호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1992년 10월이었다.

당시 헵번은 소말리아와 베트남 등 전세계 빈민국에서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일원으로 어린이 구호활동에 주력하던 터였다. 주치의는 아프리카 일대에서 유행하는 아메바성 장염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항생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 미국 LA 최고의 병원으로 평가받는 세다사이나이 병원에 응급입원하게 된다. 검사 결과는 말기 대장암. 사흘 만인 11월 2일 응급수술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미 암세포가 대장은 물론 인근 방광과 콩팥까지 침투한 말기였다. 결국 진단 후 1백일도 채 되지 않은 93년 1월 20일 그녀는 사망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7월 두세 시간 동안 체니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대장에서 발견된 폴립(작은 양성 종양)을 제거하고자 내시경 시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내시경 끝에 달린 올가미에 전류를 흘려 넣어주면 불과 수 초 만에 폴립은 간단하게 제거된다.

권력이양이 필요한 이유는 시술 자체보다 통증을 없애기 위해 투여한 마취제에서 완전히 깨어날 때까지 두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물론 부시 미국 대통령의 현재 건강은 매우 양호하다. 헵번의 비극과 부시의 건강이 엇갈린 단적인 이유는 대장 내시경에 있다. 증상이 없을 때 검진 차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두는 배려가 생과 사를 갈라놓은 것이다.

최근 수면내시경 사망 사고가 잇따르면서 내시경 시술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긴 올해에만 서울.부산에서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다 숨진 사람이 두 명이다. 수면내시경 때 사용하는 마취제 프로포폴의 부작용 때문이다.

프로포폴은 구역질 등 기존 마취제의 부작용이 거의 없고 빨리 깨어난다는 장점 때문에 수면내시경 이외에도 요실금 수술과 임신중절수술, 성형수술이나 치과수술 등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약물이다. 문제는 이 약이 1만명당 3명 꼴로 호흡곤란과 부정맥 등 심장과 폐에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미 올해 발생한 두 건 이외에도 200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네건의 사망 사례를 따로 보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시경 검사는 받아야 하는가. 기자는 당연히 '그렇다'라고 답변하고 싶다. 내시경은 비용효과 면에서 가장 탁월한 시술이기 때문이다. 위암은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암이며 대장암은 한국인에게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암이다.

현재 전체 암환자 3명 중 1명은 위암 아니면 대장암이다. 위암과 대장암은 일찍 발견하면 95%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 그리고 위암과 대장암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기발견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내시경 검사다. 기자 역시 30세 이후부터 2년에 한번 꼴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으며 40세가 채 안됐지만 지난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바 있다. 대장내시경의 경우 부시 대통령의 경우처럼 진단과 동시에 치료까지 겸할 수 있다.

수면내시경 또한 결코 나쁜 검사가 아니다. 내시경 검사를 받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통증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있다지만 1만명 중 9천9백97명은 괜찮다. 나머지 3명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이 필요하다.

우선 평소 심장과 폐에 질환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이런 분들은 아프지만 일반 내시경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참고로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재직시절 수면내시경을 거부한 바 있다.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마취제로 인한 두세 시간의 국정공백을 꺼렸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주치의였던 고창순 박사의 회고다. 긴장을 풀고 의사의 지시대로 튜브를 삼키면 의외로 아프지 않게 끝날 수 있다.

통증이 싫다면 수면내시경을 받으면 된다. 다만 이 경우 의료진은 시술 후 환자의 호흡과 맥박 등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사실 호흡곤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도 산소마스크나 인공호흡 등 응급처치만 제대로 하면 생명을 잃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퇴원을 서두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대부분 길어야 30분 이내에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빨리 깨어난다. 그러나 만의 하나 있을 수 있는 부작용 때문에 시술 후 2시간 정도는 병원에 머물면서 호흡과 맥박이 괜찮은지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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