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 막을 수 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 사례가 8년만에 발견된 데 이어 3개월만에 똑같은 감염 사례가 재확인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국내 혈액 관리 체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쓰는 효소면역검사법에 의한 항체 검사로는 초기 에이즈 감염자를 가려내기 어렵고, 감염자가 그 사실을 모른 채 헌혈할 경우 수혈을 통한 제3자 감염을 막을 방법이 없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효소면역검사법으로 항체 검사를 할 경우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 감염 후 3~4주 이내 초기 감염자는 에이즈 바이러스 음성 반응이 나온다. 항원 검사를 해도 바이러스 '음성 반응' 기간이 1주일 정도 짧아질 뿐이다.

결국 이 검사법으로는 감염 후 2~3주 이내의 에이즈 감염자가 헌혈을 해도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그 혈액이 제3자에게 수혈될 수밖에 없다.

효소면역검사법은 또 거짓 양성이나 음성이 나올 수도 있어 한 국가의 에이즈 방어망을 통째로 걸어 놓고 있기에는 그 신뢰도가 너무 낮다.

최신 핵산증폭검사법(NAT)의 경우 효소면역검사법보다는 약간 낫지만 역시 감염 후 2-3주 이내의 초기 감염자를 가려내지 못한다.

보건원은 올해 예산으로 38억원을 확보, NAT 장비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가려내지 못하는 초기 감염자 범주를 '감염후 3-4주 이내'에서 '감염 후 2-3주 이내'로 약간 축소할 수 있을 뿐이다.

검사망을 빠져 나간 에이즈 감염자의 헌혈 사실이 추후 포착되더라도, 감염 혈액의 공급 경로를 뒤쫓아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번 사례에서도 군복무중인 A(21)씨가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뒤 그의 헌혈 기록과 혈액이 공급된 의료기관을 추적해 수혈자의 감염 사실을 알아내는데 2개월이소요됐다.

수혈자의 신원을 알아내도 이미 에이즈에 감염됐을 경우에는 사후 관리적조치 외에 별다른 구제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금전적 보상이나 국가의 치료 지원을 규정하는 조항은 전무하고, 대한적십자사 내규에 수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있는 것이 고작이다.

보건원 역학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12월 논산훈련소 입소시 헌혈을 하면서 문진표에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보건원이 궁여지책으로 동성애자 등 에이즈 위험군에 대한 헌혈 자제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A씨 사례에서 확인됐듯이 이 또한 실효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국가 혈액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는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이 수혈 과정의 에이즈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보건원의 권준욱 방역과장도 "현재의 검사법으로는 항체가 형성되지 않은 초기 감염자의 에이즈 감염 여부를 밝혀낼 수 없다"면서 "다만 핵산증폭검사 장비가 도입되면 그같은 수혈 감염의 위험을 다소 낮출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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