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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양천서장 심경 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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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아동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서울 양천경찰서의 이화섭 양천경찰서장은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지난 4일 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서장은 “보고를 받지 못하는 시스템이지만, 제 책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경찰대 6기 출신으로 1990년 경위로 임용된 이 서장은 경찰청 혁신기획조정담당관, 경찰개혁추진 TF 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지난해 1월 양천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 다음은 이 서장과의 주요 문답.

[청와대 청원 캡쳐]

[청와대 청원 캡쳐]

"서장 보고 지침 없었다...다만 제 책임도 있어"

사건을 뭉갰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여성·청소년 관련 4개의 수사팀이 있는데 매번 다른 팀들이 신고를 받았다. 이번 사건 계기로 제도는 개선이 됐다. 그 이전에는 접수되는 순서로 배당을 받아보니 그런 일이 발생했다. 명확한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각각의 신고 당일 당직팀들이 사건을 받게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이 부분도 개선이 됐다.(※지난해 11월 경찰청과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응급조치 기준'을 발표했다. 학대 신고가 두 번 이상 들어온 아동의 몸에서 상처가 발견되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출동해 72시간 동안 응급 분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일부 징계가 있었지만 '정인아 미안해' 추모가 이어지며 양천서 책임론 이어진다
거기에 대해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서장은 징계를 받지 않았으며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바뀌기 전 지침을 보면 서장에게 보고할 사건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건이 있다. 이전 3건의 사건이 서장에게 명확하게 보고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제가 보고를 못 받은 이유 중 그런 부분도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바뀌었다.
과거 경찰청 핵심부서 근무 경력이 감찰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혀 사실무근이다. 10월에 정인양이 사망하기 전에는 사건에 관해 내부에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절차상 서장에게 보고하라는 명확한 지침이 없었다. 물론 제가 알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제가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다 저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찰도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이번 사건 계기로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올해는 경찰에게 '책임수사 원년' 이다. 온전하게 경찰이 종결권을 갖고 처리하게 되는 거다. 이건 종결권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도적인 문제와 여러 가지가 얽혀있는 문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부 제도적인 미비는 상당 부분 보완이 됐다. 부족한 부분은 경찰이 계속해서 책임을 갖고 나가야 한다고 본다.  
3일 양천경찰서에 '16개월 입양아 사망 사건' 담당 경찰관 엄중 처벌 요청 글 쏟아지며 서버가 한때 다운됐다. [양천경찰서 홈페이지 캡처]

3일 양천경찰서에 '16개월 입양아 사망 사건' 담당 경찰관 엄중 처벌 요청 글 쏟아지며 서버가 한때 다운됐다. [양천경찰서 홈페이지 캡처]

이 서장과 경찰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지난 3일 올라온 '양천경찰서장과 담당 경찰관을 파면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은 5일 17만명을 넘었다.

"보고 올라갔으면 달라졌겠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서장이 지휘책임상 모든 보고를 받기 어렵지만, 개인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의 문제"라면서 "아동과 학대자 간 관계를 어떻게 다시 설정할 것인지, 학대자에 대한 교육과 점검, 감시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서장에게 보고가 올라갔다면 결과가 달랐을지 의문"이라면서 "현장과 경찰조직에 인권감수성, 아동학대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인력, 권한, 예산 강화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한다"면서 "경찰에서 아동 관련 업무는 소외된 부서, 고생만 하고 승진 이점이 없다고 여겨진다. 경찰 내에서 조직 진단을 통해 아동 문제를 우선적으로 여기기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본청. [연합뉴스]

경찰청 본청. [연합뉴스]

수사권 조정과 함께 아동 보호 대안 내놓아야 

두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학대당한 아동이 이의신청하기 어려운 제도의 문제점도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학대당한 아동이 수사 종결 이후 이의신청을 하기 어렵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어도 수사와 재판을 챙길 수 없고 아동이 혼자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하고 그걸 주변에서 귀 기울일 때 재판 등 절차를 거칠 수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엔 검사가 한 번 더 볼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인권 보호를 위해 수사권 조정을 한다고 했으면 절차에 문제제기 할 수 없는 아동 같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도 "피해자에게 피해 설명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특별 대리인을 선임해줘야 하는데 현재 법률적 대응과 지원 체계 없다"면서 "구조적으로 법률적 대응이 어려운 상태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지만, 논의에서 후순위로 밀려 아직까지 보완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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