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신간] 20세기초 샌프란시스코의 페스트 "격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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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공포는 이미 기원전 천년 무렵 중동지역에 번성했던 히타이트 왕국이 남긴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히타이트 어느 왕이 올린 기도문에는 신(神)을 협박하는 구절까지 있다. 그 요점은 이랬다.

"신이시어, 오늘 당장 이 저주를 그치게 해 주지 않으면 당신을 버리겠소".

페스트하면 보카치오가 남긴 「데카메론」을 떠올리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페스트는 유럽을 덮치고 19세기는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중국까지 침투했다.

페스트는 다시 1900년에는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다. 쥐를 통해 감염되는 페스트균은 중국인 수만 명이 몰려 사는 샌프란시코로 침투했다. 묘한 것은 페스트균이 상륙한 이 해가 쥐의 해였다.

그 첫 희생자는 그 해 3월6일,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했다. 이름은 왕춧킹. 나이 41세 목재상이었는데 듀폰가 1001번지 허름한 글로벌호텔 독신 투숙자였다. 왕춧킹은 시신 조직 검사 결과 페스트 희생자임이 밝혀졌다.

차이나타운 주위로 방역라인이 설치됐고 대대적인 페스트 소탕작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더욱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 의학전문기자 마를린 체이스는 1900년 이후 1910년까지 샌프란시스코를 공포로 몰아넣은 이 전염병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격리」(북키앙)에서 여기에 내포된 다른 이면을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병인(病因)과 전파방식이 명확히 확인된 이후에도 인간은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벌여나가야 했다. 과학의 이름으로 질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동시에 인간의 공포심에 기댄 다른 사악함과의 싸움을 병행해야만 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이스는 인종적 편견.격리 조치에 따른 패닉.경제적 손실을 두려워한 행정당국의 사실 은폐와 축소를 거론한다.

'태평양 연안의 파리'를 꿈꾼 샌프란시코 행정당국자들은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페스트 발병 사실을 숨기려 했으며, 그것이 드러난 뒤에도 실상을 왜곡하려 했다.

그러면서 페스트를 '중국병'으로 몰아가려 했다. 초기에 설치된 방역라인이 차이나타운 경계를 따라 설치됐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어쩌면 페스트를 차이나타운으로 몰아넣고 중국인과 함께 그곳에서 박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사스'(SARS)와 에이즈의 시대에 100년 전 페스트가 만연한 샌프란시코를 들여다 보는 것이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윤금 옮김. 340쪽. 9천800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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