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당신이 대통령] 돈과 권력과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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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불로초랄까. 돈과 권력으로 건강을 얻을 수 있을까.

최근 TV 회견에 비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굴은 부쩍 초췌해진 듯했다. 돈과 권력이 건강과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지 살펴보자.

일단 돈과 권력의 힘을 과소평가해선 곤란할 듯싶다. 기자가 아는 한 전 세계 국가원수 가운데 재임 중 암에 걸려 사망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한평생 2명 중 1명은 암에 걸리며 4명 중 1명은 암으로 숨진다. 국가원수라고 암세포가 일부러 봐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정답은 철저한 검진에 있다.

지난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잠시 권력을 체니 부통령에게 이양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면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암이 되기 직전 단계에서 발견된 폴립(작은 양성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클린턴 대통령도 등에 난 작은 혹을 피부암 예방 차원에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근교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해마다 정기검진을 받는다. 수석 주치의는 소장 직급의 군의관이며 존스홉킨스병원 등에서 위촉된 세계 최고의 명의들이 자문의사로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첨단장비를 동원해 몇㎜의 암덩어리까지 이잡듯이 찾아낸다.

이처럼 질병을 빨리 찾아낸다는 점에서 돈과 권력은 분명 위력을 발휘한다. 고가 검진과 명의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에서 소외된 보통 사람들은 건강에서도 차별받는 것일까. 결론은 반드시 그렇진 않다.

우선 치료를 살펴보자.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심장병 치료제로 복용한 약은 아스피린이며 불면증에 시달리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찾던 약도 할시온이란 평범한 수면제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접근이 허용되는 특별한 약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DJ도 만성 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으며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일본 방문 만찬회장에서 쓰러진 뒤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받아야 했다.

물론 수술 등에서 명의들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항상 이롭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의사들이 긴장해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생기는 이른바 'VIP 증후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말 우리나라를 방문한 콜롬비아 대통령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주일 만에 퇴원했을 대장 게실염(憩室炎)으로 국내 병원에 한달 이상 입원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의사들이 지나치게 긴장해 수액 과다 공급이란 부작용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방은 더욱 그러하다. 금연이나 운동 등 예방에선 국가원수나 일반인이나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리한 측면이 많다. 전립선암을 보자.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과 덩샤오핑은 물론 아키히토 일왕과 알베르 벨기에 국왕이 모두 전립선암 환자다. 의전상 오래 앉아 있고 덜 움직이는 생활이 초래한 결과다. 국가원수가 받는 스트레스도 감안해야 한다. 무리를 통솔하느라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두머리 원숭이일수록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느라 부신(副腎)이 부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우리나라의 백세 이상의 장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평균 소득 이하의 시골 촌부가 가장 많았다.

돈과 권력을 좇다 보면 명을 재촉할 수 있다. 아주 가난하지만 않다면 건강은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다. 건강에서만은 당신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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