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왕' 인천과 함께 왕좌를 꿈꾸는 조성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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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팬들은 구단을 향해 '성환종신'(조성환+종신계약)을 외치고 있다. 조 감독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팬들은 구단을 향해 '성환종신'(조성환+종신계약)을 외치고 있다. 조 감독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 K리그1(1부) 인천 유나이티드의 별명은 '생존왕'이다. 시민구단으로 재정이 넉넉지 않고, 선수층은 얇다. 그런데도 2013년 승강제 도입 이래 결국은 1부에 잔류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정말 버티기 어려워 보였다. 개막 후 14경기(5무9패)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당연히 최하위(12위)였다. 그때가 시즌 전체(27라운드)의 절반을 막 넘어선 시점이었다. 인천의 반등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적적으로 1부 잔류 이끈 사령탑 #14경기 무승 때 팀 맡아 6할 승률 #주전·후보 간 경쟁 유도 전력 상승 #챔피언스리그 출전 프로젝트 가동

인천은 또 한번 예상을 뒤엎고 살아남았다. 인천은 10월 31일 시즌 최종전에서 FC서울을 1-0으로 물리쳤다. 승점 27의 인천은 부산 아이파크(승점 25)를 제치고 11위로 올라섰다. 인천은 내년에도 1부 무대를 누빈다. 인천의 극적인 1부 잔류는 전북 현대의 우승보다도 화제가 됐다.

인천의 '생존극' 또는 '잔류'극을 연출한 건 조성환(50) 감독이다. 14경기 무승이던 8월 초 인천 지휘봉을 잡은 조 감독은 이후 13경기에서 7승(1무5패)를 만들어냈다. 순위 경쟁이 가장 치열한 후반기에 6할 넘는 승률을 챙긴 건 기적이다. 조 감독은 데뷔전을 제외한 12경기(7승1무4패)이 성적이 같은 기간 우승팀인 전북 성적(8승1무3패)과 비슷하고, 준우승팀 울산 현대(6승3무3패)보다는 오히려 낫다.

조성환 감독은 14경기 무승 인천에 부임해 극적 1부 잔류를 이끌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조성환 감독은 14경기 무승 인천에 부임해 극적 1부 잔류를 이끌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최근 만난 조성환 감독은 "주변에서 '인천은 난파선'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적을 만들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자신 있었다. 한여름 인천을 맡으며 '겨울에 선수들과 마주보고 웃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내년엔 상위권에서 재밌게 놀겠다"고 자신감도 내비쳤다.

조 감독 부임 뒤로 팀 분위기부터 바꿨다. '준비된 선수만 뛴다'는 원칙을 세웠다. 후보에게도 기회를 줬다. 조 감독 의도는 주효했다. 주전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기회에 굶주렸던 후보는 이를 악물었다. 백업 골키퍼 이태희는 조 감독이 발굴한 대표 사례다. 주전을 꿰찬 이태희는 매 경기 '선방쇼'를 펼쳤다.

조성환 감독은 경쟁을 통해 선수단 [사진 프로축구연맹]

조성환 감독은 경쟁을 통해 선수단 [사진 프로축구연맹]

선수단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비장했다. 선수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기 전 라커룸에서 필승을 다짐했다. 인천은 조 감독 부임 후 두 번째 경기였던 16라운드 대구FC전에서 감격의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조 감독은 "선수들의 승리욕을 자극했을 뿐이다. 대구전 90분은 마치 900분처럼 느껴지더라. 다행히 빠른 시간 내 첫 승을 거둬 생각보다 일찍 분위기를 반전했다"고 설명했다.

2015시즌 제주 유나이티드(당시 1부) 사령탑에 오른 조 감독은 부임 2년 차에 팀을 3위에 올려놓았다. 이듬해 준우승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2018년 팀과 함께 급추락했다. 극심한 부진으로 팀은 최하위에 머물렀고, 조 감독은 중도 사퇴했다. 조 감독은 "제주에서 천당도 경험했지만, 9경기 무승(2018년), 15경기 무승(17년)처럼 지옥도 경험했다. 돌아보면, 위기 때 내가 먼저 지쳤던 것 같다. 그때 실수를 교훈 삼아 인천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선수도 나와 함께 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천 팬들은 구단을 향해 '성환종신'(조성환+종신계약)을 외치고 있다. 조 감독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인천 팬들은 구단을 향해 '성환종신'(조성환+종신계약)을 외치고 있다. 조 감독도 같은 마음이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기존 선수 중 제주 시절 조 감독과 함께했던 선수가 많은 것도 조 감독이 팀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오반석과 양준아, 김준엽, 아길라르 등이다. 특히 아길라르는 시즌 최종전에서 잔류를 확정하는 결승골을 쐈다. 조 감독은 잘 아는 선수들의 도움으로 나머지 선수들의 성향도 빨리 파악했다. 신인급 선수들에겐 그들의 눈높이를 맞췄다. 연차와 관계없이 모두가 뭉치는 원팀을 위해서다. 무뚝뚝한 성격에도 '아재개그'로 다가갔다. 조 감독은 "젊은 선수들만 모아서 운동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배경음악으로 90년대 만화 '축구왕 슛돌이' 주제가를 틀어줬는데, 실소하더라. 그밖에도 알게 모르게 나름대로 많은 개그를 시도했는데, 전달됐는 지는 모르겠다. 성적 스트레스를 주는 '꼰대'의 모습보단 소통하려는 노력도 했다"고 자랑했다.

인천 팬들은 조 감독을 붙잡아 달라고 성화다. 팬들은 구단을 향해 '성환종신'(조성환+종신계약)을 외치고 있다. 조 감독 계약은 내년까지다. 그의 마음도 팬과 같다. 그는 인천을 이끌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팀들은 쉬거나 홈에서 훈련하는 지금 제주로 마무리훈련을 떠났다. 그는 "제주가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했던 것처럼, 인천에게도 남 얘기가 아니다"라고 자신했다. 구체적 계획을 묻자 머리를 가리키며 "이 속에 로드맵이 있다. 2~3년 발판을 다지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제 인천도 '생존왕'이 아닌 '왕'에 도전할 때"라고 말했다.
인천=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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