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손등 만진건 추행" 1·2심 무죄 뒤집은 박상옥 대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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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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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서 인사참모로 복무 중이던 A씨는 지난해 업무 보고를 하러 온 여후배에게 “이게 뭐냐”고 말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양손으로 후배의 왼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손등 부분을 10초가량 문지른 A씨는 업무상 자신의 지휘를 받는 관계를 이용해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모두 무죄

A씨는 법정에서 “위와 같은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A씨가 그의 손등을 10초가량 만진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이것이 업무상 위력을 이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1‧2심 모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행동이 일반적‧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손등을 만진 행위가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는 있지만 성추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또, A씨에게 추행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다고 결론 냈다.

대법 “원심의 판단, 수긍하기 어렵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의 생각은 달랐다. A씨의 행동은 성적인 동기가 내포된 행위라며 사건을 다시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이전에도 A씨의 성희롱적 말이나 행동 때문에 힘들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에 주목했다. 둘만 있는 사무실에서 성적인 의도 외에 굳이 10초간 지속해서 여후배의 손등을 만질 이유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에게 접촉한 특정 신체 부위만을 기준으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지가 구별되는 건 아니며 A씨가 추가적인 성적 행동을 했어야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씨의 행동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 추행행위라고 판단했다.

최근 성범죄 사건에서 1‧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18년 대법원 1부는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찾아가 껴안고 키스한 4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돌려보냈다. 1‧2심은 여자친구가 특별히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강제추행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법 재판부는 “여자친구가 남성을 빨리 돌려보내기 위해 저항하지 않은 사정을 고려할 때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8월에는 회식이 끝난 뒤 “모텔에 가자”며 여직원의 손목을 잡아끈 상사의 행동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심은 “접촉한 신체 부위만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 2부는 “모텔에 가자면서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는 이미 성적인 동기가 내포돼 있다”고 봤다. 이때도 재판부는 “접촉한 특정 신체 부위만을 기준으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지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세 사건 모두 주심은 박상옥 대법관이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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