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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가정도 버렸다···美 '국민밉상'과 사랑에 빠진 여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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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미국 제약회사 튜링의 전 CEO 마틴 슈크렐리. 로이터=연합뉴스

금융사기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미국 제약회사 튜링의 전 CEO 마틴 슈크렐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the most hated man in America)’로 불린 금융사기범과 사랑에 빠져 직장과 가정도 버린 여기자의 사연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주인공은 블룸버그 통신의 기자였던 크리스티 스마이드와 증권사기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마틴 슈크렐리(37)다.

두 사람의 사연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패션잡지 엘르가 공개한 스마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USA투데이·가디언 등 영미권 주요 매체가 일제히 인터뷰를 인용했고, 뉴욕타임스(NYT)는 직접 스마이드를 접촉했다. 특히 슈크렐리가 악명 높은 ‘악질 사업가’, ‘국민 밉상’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어쩌다 사랑에 빠졌는지 관심이 집중됐다.

기자-취재원, 감옥서 시작한 러브스토리

월가의 펀드매니저 출신인 슈크렐리는 2015년 제약업체 튜링을 창업해 성공한 기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에이즈 치료제인 다라프림의 특허권을 사들인 뒤 한 알에 13.5달러(약 1만5000원)였던 약값을 단숨에 750달러(약 80만원)로 인상해 ‘자본주의가 낳은 냉혈한’이라는 비난에 휩싸인 인물이다.

폭리 논란은 미 하원 청문회로 이어졌고, 청문회에 출석한 슈크렐리의 태도는 미국인들의 공분을 샀다. 그는 운동복을 입고 나와 실실 웃으면서 모든 질문에 “(불리한 질문에 답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수정헌법 5조에 따라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청문회가 끝나고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바보들이 정부에서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결국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고, 그는 약값 인상이 아닌 헤지펀드와 바이오기업 등을 운영하며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15년 체포됐다. 이 소식을 특종 보도한 기자가 스마이드였다.

자신과 마틴 슈크렐리의 이야기를 보도한 기사를 게시한 크리스티 스마이드의 트위터. 트위터 캡처

자신과 마틴 슈크렐리의 이야기를 보도한 기사를 게시한 크리스티 스마이드의 트위터. 트위터 캡처

스마이드는 슈크렐리를 줄곧 취재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기자와 취재원에서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 스마이드는 NYT에 “슈크렐리가 (2017년) 재구속된 이후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2018년 스마이드는 블룸버그에서 퇴사했고, 그 이듬해엔 이혼했다.

스마이드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지나고 생각해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특별한 감정을 품은 인물을 취재하면서 직면한 윤리적 문제에 대처한 방식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름 이후 연락두절…출소 기다리겠다”

두 사람은 면회와 전화, 이메일 등으로 관계를 이어나갔다. 올해 초 슈크렐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석방을 신청했을 때는 스마이드가 재판부에 서한도 보냈다. 스마이드는 “그의 여자친구이자 삶의 동반자로서 서한을 제출한다”면서 “슈크렐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잠재적 ‘사형 선고’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돼 있다. 스마이드는 지난 2월 마지막으로 슈크렐리를 만났다고 했다. 전화통화는 지난여름이 마지막이었고, 슈크렐리는 더는 이메일에 답장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스마이드는 “우리는 함께할 수 있는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막상 현실화하자 슈크렐리가 겁을 먹은 것 같다”며 “그는 미디어 노출에 대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3년 9월 석방될 예정인 슈크렐리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은 자사 기자와 취재원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슈크렐리에 대한 스마이드의 보도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슈크렐리에 관한 스마이드의 행동은 블룸버그 기자로서 맞지 않다”며 “스마이드는 사표를 냈고 우리는 받아들였다“고 부연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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