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이라면 한번은 쓴다...'고속성장 입시분석기'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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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한 학원이 개최한 대입 전략 설명회 참석자가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한 학원이 개최한 대입 전략 설명회 참석자가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 발표를 하루 앞둔 가운데, 정시모집을 준비하는 수험생 사이에서 최근 제작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시 분석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입시 커뮤니티에서 ‘고속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한 이용자가 만든 분석기로 합격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입시 전문가 사이에서는 “참고할만한 자료”라는 평가와 “합격 예측을 그대로 믿기는 위험하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체불명 개인이 만든 '입시분석기'에 몰리는 수험생

입시업계에 따르면 고속성장 분석기는 4~5년 전부터 일부 수험생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해 최근엔 수험생들이 대부분 한 번쯤은 이용해보는 자료로 떠올랐다. 서울 강남의 한 사교육 업체 관계자는 “입시 상담을 할 때 고속성장 분석을 해봤다는 수험생이 절반 이상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학사나 메가스터디, 유웨이 등 대형 업체들이 주도하던 대입 모의지원 시장에서 한 개인이 만든 자료가 주목을 받는 것이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험생들이 고속성장 분석기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험생들이 고속성장 분석기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분석기는 엑셀 프로그램으로 만든 자료다. 수능 성적을 입력하면 전국 대부분 대학의 환산점수가 계산되고 지원 가능 여부까지 판단해준다. 지난해까지는 무료로 공개됐지만, 올해부터는 1만원을 계좌로 입금하면 메일로 보내준다. 업체의 모의지원 서비스 요금(8~10만원)에 비한다면 저렴한 편이다.

"평범한 직장인…취미 삼아 입시정보 활동"

신상노출을 꺼린 '고속성장'은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농경제사회학을 전공하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며 “입시 업체와는 무관하고, 취미 삼아 활동한다”고 말했다. 무료 배포하던 자료를 유료로 바꾼 것에 대해서는 “육아 휴직을 하면서 생활이 빠듯해서”라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분석기는 다운로드 10만회를 기록했다. 수험생끼리 공유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용자는 더 많을 수 있다. 그는 “입시가 복잡한데 수험생에게 정보가 부족하다 생각해 분석기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방대한 자료를 모으는 방법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교육부와 대학 자료를 모으고 입시 예측을 위해 과거 입시정보 등도 확인한다”며 “가정용 컴퓨터로 하다 보니 연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5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에서 수험생들이 논술 시험을 보고 있다. 뉴스1

5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에서 수험생들이 논술 시험을 보고 있다. 뉴스1

올해 입시에 대해서는 “수도권 대학 집중이 심해지고 취업 걱정이 적은 학과 선호도는 더 올라갈 것”이라며 “내년에 수능이 개편되니 하향 지원해서라도 올해 합격하겠다는 수험생이 많지만, 학생 수가 줄어드니 대입이 쉬워질 거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지원하는 수험생도 있다”고 말했다.

합격예측 믿을 수 있나…“입시정보 투명해야”

입시 전문가들은 분석기가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반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은 “대학마다 제각각인 환산점수를 수험생이 일일이 계산하기 어려운데 대신 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합격 예측도 크게 비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입시 전문가는 “실제 성적 데이터를 다량으로 확보할 수 없는 개인이 만든 자료라 합격 가능 여부를 믿으면 안 된다”며 “참고할 수는 있지만, 과거 결과에 따른 예측 수준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개인이 대학을 서열화해서 실제 지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돈까지 받는다면 변칙 영업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속성장은 “수험생의 복잡한 심리를 예측하고 지원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득에 대해서는 신고 방법 등을 알아보고 있다”고 답했다.

한 입시 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합격예측 서비스의 상품 가격. 인터넷 캡처

한 입시 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합격예측 서비스의 상품 가격. 인터넷 캡처

인터넷에는 대형 업체뿐 아니라 개별 강사, 중소 학원 등이 만든 배치표도 적지 않다. 이처럼 입시 자료가 난무하는 이유는 합격에 대한 정보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이 모의지원에 수십만원을 쓰고 불확실한 인터넷 정보까지 찾는 이유는 대학의 합격 점수 정보가 여전히 제대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속성장도 “입시가 경쟁이지만 왜 떨어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며 “선발 기준과 결과가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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