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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2위, 떠나기 직전 우승…반전의 김도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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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울산 현대 선수들이 챔피언스리그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울산 현대 선수들이 챔피언스리그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만년 이인자’. 프로축구 울산 현대 김도훈(50) 감독에게 붙은 꼬리표다. 스타 선수가 즐비한 울산은 최근 3년간 네 차례 준우승(2018년 축구협회(FA)컵, 19년 리그, 20년 리그·FA컵)했다. 우승은 부임 첫해인 2017년 FA컵 단 한 번이다. 특히 올 시즌에 리그와 FA컵 우승은 모두 전북 현대에 내줬다. 울산 팬들은 그를 ‘전북이 심은 X맨’이라고 비아냥댔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에 좋은 성적을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울산 현대, 아시아 챔스리그 우승 #결승전서 이란 팀 꺾고 8년 만에 #국내선 준우승만 하다 계약 종료 #우승감독 되면서 되레 입장 느긋

김 감독은 마지막 도전에서 역전 드라마를 썼다. 울산은 19일(한국시각) 카타르 알 와크라에서 열린 2020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페르세폴리스(이란)를 2-1로 이겼다. 전반 45분 페르세폴리스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전반 49분과 후반 10분 주니오의 연속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울산은 2012년 이후 8년 만이자, 대회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무패(9승1무) 우승이다. 상금이 400만달러(44억원)다. 내년 2월 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클럽월드컵 출전권도 거머쥐었다.

울산 윤빛가람이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김 감독은 우승 후 “(연이은 준우승으로) 팬들께 죄송하다. 이번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선수들과 같이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좋은 시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컵을 든 김도훈 감독. [뉴스1]

우승컵을 든 김도훈 감독. [뉴스1]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월 중단됐다가, 중립지역인 카타르에서 지난달 18일 재개됐다. 결승 진출팀은 3일 간격으로 경기를 치르는 살인적 일정을 견뎌야 했다. 시즌 직후라서 선수들은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게다가 전북에 연거푸 우승컵을 내줘 사기도 떨어졌다. 설상가상, 주전 골키퍼 조현우가 축구대표팀 유럽 원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함께하지 못했다. 원두재·김태환·정승현 등 다른 대표선수는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대회 초반 자가격리해야 했다. 주전이 대거 빠져 초반 탈락할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김 감독의 결단이 빛을 발했다. 먼저 올 시즌 1분도 뛰지 못한 백업 골키퍼 조수혁에게 전 경기 골문을 맡겼다. 조현우가 회복해도 대회 중후반 합류시키지 않기로 했다. 조수혁에게 우회적으로 믿음을 보여준 거다. 이에 부응하듯 조수혁은 수 차례 선방으로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살인적 일정 속에서 김 감독은 매 경기 선수를 교대로 내보내며 체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울산은 카타르에서 대회가 재개된 뒤 9경기에서 22골을 몰아쳤는데, 절반 가까운 10골을 교체 선수가 넣었다. 교체 선수의 득점으로 역전승한 경기가 세 차례다. 전술과 선수 기용을 둘러싸고 비난에 시달렸던 리그 때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결승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결승전은 내가 우리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다. 반드시 이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선수들 승리욕을 자극했다. 그간의 성적 부진으로 구단과는 이미 재계약하지 않기로 한 상황. 이런 사실을 공개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는 이를 오히려 승부수로 활용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유종의 미를 거둔 김 감독은 우승 직후 “카타르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기 잘했다”고 털어놨다.

울산 구단은 20일 김 감독과 결별 방침을 발표했다. 우승으로 지도력을 증명해 보인 김 감독은 이제 느긋한 상황이 됐다. 그는 “축구가 즐거워야 하는데 준우승만 하다 보니 즐겁지 않았다. 카타르에서 선수들과 즐겁게 축구를 했다. 축구는 즐거운 거고, 즐거움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이다. 응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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