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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曰] 모두를 오래 속이진 못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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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30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민법 제2조 1항에 나오는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이 규정은 민법상 사인 간의 거래나 행위에 적용되지만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도 지켜져야 할 일반적 준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칙이 무너진다면 그 사회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 K 방역, 어거지 윤석열 징계 #신뢰 무너뜨리고 국민과 담 쌓은 정부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어디를 둘러봐도 불신이 판을 치고 있다.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부는 오히려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우리 편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나는 선, 너는 악이라는 구분법을 강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K방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선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했는가. 광화문 집회에 출현하는 바이러스와 민노총 집회에 퍼지는 바이러스를 두고 대응하는 방식이 180도 달랐으니 어찌 국민 다수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공공의료 개혁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려다가 의료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그 어느 때보다 의료인들의 희생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지금 이 시점에 과연 의료인들이 정부의 요구에 응해 진심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윤석열 마녀사냥’편은 더욱 가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른바 적폐청산의 1등 공신이었던 그를 일약 검찰총장에 앉혔다. “우리 윤 총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한껏 부풀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또는 집권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러한 임무에 성실하게 임했던 윤 총장에게 돌아온 것은 복수의 칼날이었다.

그를 찍어 내기 위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선봉에 내세웠으나 법무부 감찰위원회, 서울행정법원은 추 장관이 명령한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이번엔 행동대원들을 총동원해 기어코 법무부 징계위를 열어 해괴망측한 정직 2개월을 언도했다. 조금만 제정신인 사람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독단과 독선을 그들은 그들만의 ‘정의’라고 우긴다.

부동산정책 문제는 ‘일러 무엇하리오’다. 처음엔 강남과 비강남으로 나누어 재미 좀 보려다 비강남 집값이 오히려 더 올라 버리자 이젠 임대인과 임차인을 편 갈라 싸움을 붙인다. 정치의 잘못은 그 정당이 책임 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책의 실수는 해당자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긴다. 강남과 비강남, 임대인과 임차인 아무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한 엉터리 부동산정책으로 지금 대다수 국민은 ‘멘붕’ 상태다.

둔감해질 대로 둔감해진 신의성실의 원칙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눈곱만큼의 신의나 선의를 바라는 기대조차 접은 국민이 다수다. 권력을 잠시 맡긴 것은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책임져 달라는 뜻에서다. 오로지 내 편만 챙기는 아집적 행태에 다수의 국민이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검찰개혁이며 무엇을 위한 부동산정책인가.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냉소와 불신을 품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를 바로잡을 생각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국민이라는 배는 정권을 띄울 수도 있고 가라앉힐 수도 있다. 불신의 깊은 풍랑을 이겨 낼 배는 그리 많지 않다.

한 사람을 잠시 속일 순 있어도 국민 모두를 오래 속일 순 없다. 북한 같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한경환 총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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