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앓고 중국 사회가 건강해진다

중앙일보

입력

뜻밖의 재앙인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중국 사회를 바꿔놓고 있다. 경제 분야에선 큰 타격이지만 정치와 사회 등 다른 분야에선 오히려 오랫동안 고치지 못하던 악습을 떨쳐내는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

◇ 위생

노동절인 지난 1일. 베이징(北京)의 다섯살짜리 꼬마 쉬샹위는 엄마와 함께 소독약을 묻힌 거즈로 문고리와 테이블 등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연휴가 시작되는 이날 집안 청소에 나선 것은 비단 許씨 가족뿐만 아니었다. 중국의 수많은 가정이 노동절 휴일을 즐기는 대신 집안 및 거리청소 작업에 나섰다.

노동절이 '위생절'로 변한 셈이다. 중국은 사스가 불결한 위생에서 비롯한다는 판단 아래 대대적인 '클린업 차이나' 캠페인에 들어갔다.

먼저 거리에서 침 뱉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됐다. 침 뱉다 적발되면 베이징에선 1백위안, 상하이(上海)에선 2백위안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다음은 화장실 청소. 중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을 곧잘 경악케 하는 악명 높은 불결 화장실들을 이번 기회에 깨끗이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광둥(廣東)성에서만 무려 8천만명이 참가했다.

중국 언론은 1952년 천연두 등 질병 추방을 위해 대대적으로 펼쳐진 '애국 공공위생 캠페인'이 50여년 만에 부활, 중국 곳곳에 퍼지고 있다고 말한다.

◇ 모금

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의 '금 모으기' 운동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자신의 금을 쉽게 국가에 매각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인들은 사스와의 전쟁을 위해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전개 중이다.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가 지난달 30일 시작한 '천사(天使)기금' 모금 캠페인에 10만위안(약 1천5백만원)이 넘는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 언론

'기쁜 일만 보도하고 걱정거리는 보도하지 않는다(報喜不報憂)'는 중국 언론의 고질병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술대에 올랐다.

사스 발생 초기에 이를 보도하지 않았던 언론들 탓에 세계 각지로 사스가 확산됐다는 뼈아픈 반성이 밑바탕이 됐다. 각 신문엔 요즘 매일 전국의 사스 환자 현황이 큼지막하게 보도된다.

중국경제시보(中國經濟時報)는 인터넷 시대에 소식을 통제하려 한 중국 관리의 뒤떨어진 인식을 통박하며 이젠 중국 정부가 그릇된 '관념(官念)'을 바꿔야 할 시대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잘못도 가감없이 비판하려는 중국 언론의 달라진 모습이다.

◇ 행정

'잘못하지 않으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나이가 차지 않으면 퇴직하지 않는다'는 관리들의 구태가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멍쉐눙(孟學農)은 사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취임 석달도 안돼 베이징 시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위생부장 장원캉(張文康) 역시 사스 확산 현황을 은폐했다는 죄로 자리를 박탈당했다. 사스 대처에 소홀한 지방도시 관리들 또한 줄줄이 면직되고 있다. 책임 행정이 서서히 기틀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중국 당국은 곧 발표할 '국유자산관리법'에 아예 '문책제(問責制)'를 도입, 국유자산 관리를 잘못하는 관리는 엄벌에 처하는 등 책임 행정을 제도화할 방침이다.

이같은 행정 개혁이 중국의 정치 개혁에 불을 지피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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