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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석열 몰아낸 정권, 이젠 수사 덮을 일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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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처분을 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재가해 윤석열 없는 검찰, 친정부 검사들이 수사·기소 권한을 완전히 장악한 어용 검찰이 현실화됐다. 징계위원들은 법·규범·상식을 모조리 무시했다. 그들의 양심이나 자존감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무참히 깨졌다. 지난 1년간 오로지 윤석열 찍어내기에 매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그를 호위하며 허위 징계 사유들을 창조해 낸 정치검사들, 권력의 주변에서 서성이다 완장을 얻어 차고 폭거에 가세한 법조인과 학자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파괴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위법·부당한 징계로 ‘어용 검찰’ 완성 #원전·라임·울산 사건 왜곡·축소 가능 #사법부에 상식·법치 회복 소임 주어져

윤 총장 징계는 우선 내용 면에서 위법하고 부당하다. 징계의 근거로 삼은 사유들은 하나같이 괴이하다. 판사 사찰을 지시했다는데, 대다수 판사가 공개된 정보 취합을 사찰이라고 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퇴임 뒤에 정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아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억지에는 많은 국민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는 오히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친정부 검사들에게 해당하는 ‘혐의’다.

징계 절차 역시 정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징계위원은 모두 부적격자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월성 원전 수사 핵심 당사자의 변호인이었다. 징계위원장 자리를 맡은 교수는 법무부 감독을 받는 조직의 현직 이사다. 다른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공천 심사에 관여한 이력을 갖고 있다. 검사 신분의 징계위원은 한동훈 검사장 사건 관련 수사 대상자다. 이런 사람 넷이 모여 윤 총장을 내쫓는 결정을 했다. 위원장은 하루 더 징계 심의를 할 것처럼 말하다가 갑자기 심의를 종결했다. 그 바람에 윤 총장 측에서는 최후 변론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 총장의 방어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절차적 정당성 주문은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 공산국가의 인민재판과 다를 게 없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거칠 것이 없게 됐다. 당장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를 원하는 대로 축소할 수 있다. 대전지검 수사팀이 버티면 추 장관이 팀을 해체하면 그만이다. 라임·옵티머스 사건도 입맛대로 처리할 수 있다. 여권 비리는 덮고, 야권 쪽만 수사해도 막을 사람이 없다. 유야무야 상태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아예 묻힐 가능성도 있다. 검찰 개혁이 검찰 개악의 끝판에 다다랐다.

앞으로 터져 나올 권력형 비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적당히 요리하도록 하면 된다. 두 달 뒤쯤 공수처에서 윤 총장을 1호 수사 대상으로 삼아 옭아맬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치밀하게 짜인 각본의 이행일지도 모른다. 검찰은 죽었고, 정권은 궤도에서 벗어나 폭주 중이다.

법치 붕괴를 막는 역사적 소임은 법원에 주어졌다. 윤 총장의 징계 처분 집행정지 요청에 법원이 신속히 판단해 주길 바란다. 권력의 횡포에 놀라고 화난 국민이 사법부를 주시하고 있다. 이달 초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배제 결정을 되돌린 조미연 부장판사에게 각계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상식 회복이라는 국민 염원이 그렇게 표출됐다. 어둠이 깊다. 그만큼 희망의 빛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