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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흥의 과학판도라상자

동물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백신 접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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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겨울이 찾아오면서 모두가 위축되고 움츠러든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심리적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하철에서 한 사람의 작은 기침 소리가 죽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 계절에 유일하게 활보하는 것은 바이러스뿐이다. 지난 12개월 동안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 왕관 쓴 모양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전문가와 방역 당국은 절체절명의 힘을 쏟아 방역정책을 실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신 개발 소식이 전해졌다. 영하 70도의 보관함에 담긴 백신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면서 처음으로 영국에서 접종을 시작했다. 그리고 “과학과 인간 독창성의 승리”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백신 개발에도 거리두기 중요 #코로나에 조류독감까지 창궐 #경제논리 뒤에 가려진 생명성 #K축산방역 위한 전략 절실해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나라보다 방역에 성공했다고 자신해온 K-방역은 고난의 겨울을 맞고 있다. 만능해결사라고 믿었던 백신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코로나바이러스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확진자가 1000명에 도달하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이 곧 무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느린 백신 확보에 분노하고 탄식한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곧 팬데믹 종식을 의미하는 장밋빛 전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봄이 오면 백신 접종으로 인구 대부분에게 면역력이 형성되더라도 살얼음판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행동’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1년 동안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내했지만 동시에 “피로감”과 “자만”이라는 마음의 복병을 키웠다. 백신도 공격적 테스트와 추적 기술도 이 마음의 복병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과학판도라상자 12/14

과학판도라상자 12/14

11월 28일 확진자 숫자가 갑자기 500명을 돌파할 때 도시인들의 관심에서 빗겨나 있는 겨울새가 모여드는 도래지와 가금류 농장에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전북 정읍의 오리농장을 시작으로 경북 상주의 산란계 농장, 경기 여주, 충북 음성까지 전국적으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야생조류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한 달 안에 양계농장으로 번질 것으로 예측했지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매우 빠르다. 발생 지역에서는 반경 3㎞ 내의 가금류 농장에서 대대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시행하고 관계자들의 이동을 48시간 중단시키는 강력한 이동제한이 실시되고 있다.

이미 예방적 살처분 조치로 인해 93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땅속에 매몰되었다. 2006년 처음 발생한 이후 2~3년을 주기로 발생하는 조류독감은 가축 방역 당국에는 골칫거리이다. 이미 조류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살처분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전근대적이고 비인도적인 살처분에 의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발생 가능한 바이러스에 대한 예측의 어려움이 있지만, 이구동성으로 백신 접종 가축은 오염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회적 편견이 백신 접종을 막는 이유라고 말한다. 현재 유일하게 동절기 오리사육을 중단하는 휴지기 제도가 실질적 대안이 되고 있다.

과도하게 밀집된 조건에서 가금류를 사육하는 집약적 축산이 조류독감과 같은 감염병 확산의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가축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지 않는 이유는 ‘상품성’과 ‘경제성’이라는 논리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인간 감염병은 ‘생명’과 관련되고 가축 감염병은 ‘경제성’과 관련된다는 이중잣대로 인해 ‘생명’은 ‘경제’라는 논리 뒤에 가려진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반복되는 바이러스 확산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인간이나 가축과 상관없이 파국적임을 경험했다. 하지만 거리두기와 백신에 대한 희망이 인간에게는 허락되지만, 가축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현실은 그 피해가 다른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간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을 무시한 근시안적인 태도에 기인한다. 물론 예방적 살처분을 한꺼번에 중단할 수 없다. 백신 접종과 살처분을 병행하는 새로운 시도는 항상 어려움이 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방역 전략이 될 수 있다. 코로나 방역으로 인정받은 K-방역이 전 세계 축산업에서도 K-축산방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기흥 포스텍교수·인문사회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