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문정희·강병인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지금 와서 무엇을 속이랴/ 내 가슴 속에는 가난과 기침 말고도/ 사랑이 가득 숨어/ 지난여름 내내 불볕이었던 것을/ 어떻게 하랴/ 바람 불어오는 벌판/ 가만히 만삭으로 물드는 수밖에

문정희·강병인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문정희 시인의 사랑에 대한 열정은 나이를 모른다. 그의 시 39편을 캘리그래피(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멋글씨) 작가 강병인이 옮겨 써 책으로 냈다. 시인의 뜨거운 사랑 시만큼이나 서체가 힘차다. 위 시는 ‘가을 고백’ 전문. 제목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는 시 ‘겨울사랑’에서 따왔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가 시 전문이다.

시인에게 사랑은 에로틱한 열정이자 삶을 삶이게 하는 동력이다. 책 맨 뒤 후기 같은 산문을 통해 “나는 아낌없이 생의 순간을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늘 타오를 때만이 진정한 목숨이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종종 부질없음의 증거가 되는 사랑의 유한성마저 사랑한다. “유효기간이 짧은 것은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이 또한 그렇다.”

처음엔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는 강병인 작가는 “어떤 글씨는 감정이 부족하고 어떤 글씨는 모자라서 부족했다”며 “시가 힘이 있고 단단해 한 번의 붓질로는 어림없었다”고 털어놨다. “어느 한 대목을 뚝 떼어놓으면 그것이 또 하나의 시가 됐다. 한 줄의 시구에서 열 편의 시를 읽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