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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없이 檢개혁 없다" 공수처법 기권한 장혜영의 소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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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비토(veto·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전광판엔 기권을 의미하는 노란색 불이 하나 들어왔다. ‘나 홀로 기권표’의 주인공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었다. 장 의원은 정의당이 이날 찬성 당론 입장을 정했는데도 소신을 굽히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사진)은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에 찬성 당론을 어기고 기권표를 던졌다. 중앙포토

장혜영 정의당 의원(사진)은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에 찬성 당론을 어기고 기권표를 던졌다. 중앙포토

“민주주의를 위한 검찰개혁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민주주의 없이 검찰개혁도 없습니다.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때 공수처의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의 핵심으로 여겨졌던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은 최초의 준법자는 입법자인 국회여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합니다.”(10일 페이스북)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스스로 세운 야당의 비토권을 공수처의 연내 출범을 관철하려고 깨버린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장 의원은 지난달 24일 당 의원총회에서도 “야당의 비토권을 힘으로 무력화하고 출범하는 공수처가 어떤 권위와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입법부인 국회가 웃음거리가 된다”고 꼬집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10일 공수처법 개정안에 홀로 기권표를 던졌다. 이날 정의당의 당론은 찬성이었다. [페이스북 캡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10일 공수처법 개정안에 홀로 기권표를 던졌다. 이날 정의당의 당론은 찬성이었다. [페이스북 캡처]

정의당은 이날 본회의에 앞서 공수처법 개정안에 찬성하겠단 취지의 당 입장문을 발표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공수처 설치를 비롯해 검찰개혁에 대한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의 정신을 매듭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비토권을 사실상 없앤 조항은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며 공수처 출범 뒤 공수처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했다. 노회찬 전 의원이 20대 국회 때 발의한 공수처법에는 대법원장이 처장 후보 2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인을 지명하는 방식이 담겨 있다.

그간 정의당에선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져 왔다.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관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소수당의 한계때문이다. 숙고 끝에 찬성 당론을 확정했지만, 여태껏 당 공식 논평은 “공수처법이 이런 방식으로 처리된다면 공수처가 전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구로 출범하기란 요원할 것”(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야당은 비토권을 잃게 되지만, 정부·여당은 여전히 비토권을 보유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김종철 대표) 등 비판 조였다.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고위공직자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하준호 기자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고위공직자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하준호 기자

이와 관련, 장 의원은 “민주주의자들의 반대 의사를 국회의 역사에 남기기 위해 반대 표결을 했어야 맞지만, 찬성 당론을 존중하기 위해 기권에 투표했다”며 “국회 임기 시작 첫날 태극기 앞에서 엄숙히 선서한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약속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당론에 어긋나는 괴로운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날 당론 확정 직후엔 “영혼이 쌔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다. 너무 괴롭다”고 토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재석 287인 중 찬성 187인, 반대 99인, 기권 1인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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