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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석 달 이상 밤참 늪에 빠졌다면 병…아침 식사, 저녁 간식이 탈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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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집콕’ 생활로 야식의 유혹에 빠진 사람이 크게 늘었다. 치킨에 맥주, 피자에 콜라 등 기름지고 자극적인 메뉴의 손짓에 흔들리기 쉽다. 그런데 3개월 넘게 밤마다 야식을 즐기고 있다면 특정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바로 ‘야간 식이 증후군’(이하 야식 증후군)이다. 이는 엄연한 질환이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승걸 교수는 “야식 증후군은 신경성 거식증, 폭식 장애 등과 함께 정신과 질환인 식이장애(섭식장애)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야식 증후군 환자는 전체 인구의 1.5%로 추정되는데 특히 정상 체중인 사람(0.4%)보다 비만 환자(9%), 심한 비만 환자(27%)에게서 훨씬 더 많이 발병한다.

'야식 증후군' 극복하기

스트레스·불안감·우울증이 주요 원인

야식을 즐기는 사람은 무조건 야식 증후군 환자일까. 그렇지 않다. 강 교수는 “세계 의학계에선 미국의 DSM(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에 근거해 야식 증후군을 진단한다”며 그 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저녁 식사 후 잘 때까지 섭취한 음식이 하루 총 섭취량의 25% 이상이고 이 시간대에 식욕이 왕성한 경우, 한밤중에 자다 깨 음식을 먹는 경우 등이 대표 증상이다. 또 주 4회 이상 ‘아침 식욕부진’을 경험하거나 야식을 즐기며 주 2회 이상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 야식을 끊지 못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일상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이를 3개월 이상 지속하면서 다른 원인 질환이 없는 경우 등에 모두 해당하면 야식 증후군으로 진단한다.

대표적인 원인은 ‘부정적인 정서’다. 심한 스트레스, 불안감, 우울증 등이다. 강 교수는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고 우울감이 심해질 때 야식을 먹어 쾌감을 느낀 경험이 많아질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뇌의 쾌감중추가 야식으로 보상받기를 원해 결국 야식에 대한 중독성을 띨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논문에 따르면 야식 증후군은 일반인의 약 1.5%에서 발견되는 반면, 우울증 환자에게선 이 비율이 21~35%까지 치솟는다.

또 다른 원인은 ‘야식을 반복적으로 먹는 습관’이다. 야식을 반복해 즐기다가 수면 리듬이 깨져 밤마다 허기를 느끼고 야식을 원한다. 야식을 먹으면 수면 시 분비되는 식욕 억제 호르몬(렙틴)이 줄어들고 식욕 촉진 호르몬(그렐린)이 높게 분비되면서 음식을 찾게 한다.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량도 줄어든다. 이는 불면증을 유발하는데, 불면증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를 높게 유지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야식을 또 찾게 한다.

야식 증후군이 데려오는 질환은 ‘비만’이다. 비만은 고혈압·당뇨병 같은 대사증후군과 심혈관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비만으로 인한 스트레스 자체가 또다시 야식의 늪으로 안내한다.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고기동 교수는 “야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로 자아존중감이 떨어지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야식 증후군 환자가 많은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보상 심리로 야식을 또 찾는다”고 언급했다. 이들 환자에겐 ‘역류성 식도염’도 잘 따라온다.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이항락 교수는 “늦은 시간 야식을 먹으면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위에 머물다가 수면 시 위 속 음식물과 위산이 식도로 올라와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심한 가슴 통증, 목 불편함, 목 이물감, 기침, 천식 증상을 동반한다. 야식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는 다양한 이유다.

따뜻힌 물로 샤워, 걷기로 식욕 억제

야식 증후군을 예방·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하루 세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챙기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침 식사를 거르면 공복 시간이 길어져 그렐린 수치가 높아지고 점심·저녁에 폭식할 위험이 증가한다”며 “야식 증후군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렙틴과 그렐린이 균형을 이루며 안정적으로 분비되도록 아침 식사를 거르지 말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게 야식 증후군 극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야식이 익숙한 이들이 당장 오늘부터 한밤중 허기를 지우기란 쉽지 않다. 늦은 시간대에 배고픔을 참기 힘들다면 따뜻한 물·우유를 마셔보자. 그래도 부족하다면 150~200㎉ 수준의 저칼로리 간식이 권장된다. 김형미 동덕여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는 “우유 한 잔에 고구마 반 개를 먹거나 양송이 수프에 토스트 한 조각을 먹으면 저칼로리로 맛있게 허기를 달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약간 뜨거운 물에 샤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 교수는 “약간 뜨거운 물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위장 활동을 억제하므로 식욕 조절에 도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걷기 운동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해소해 야식의 유혹을 막는 데 도움된다. 주 4회 이상 운동하면 식욕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이 같은 생활수칙으로도 야식의 유혹을 끊기 힘들다면 의학의 도움을 받아보자. 약물치료로는 항우울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 토피라메이트(간질·편두통 치료제) 등이 쓰인다. SSRI 계열 약은 우울감을 개선하거나 야간 각성도를 낮추고 식욕을 떨구는 데, 토피라메이트는 야식 섭취 행동 욕구를 낮추는 데 효과를 낸다. 비약물 치료로는 광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가 대표적이다. 빛을 활용한 광 치료는 우울감 개선에, 인지행동 치료는 식이 패턴, 수면 습관 개선 교육과 심호흡 등 이완 요법으로 기분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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