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담배 세금 물가연동제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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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세금이 사회 전반에 폭발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사건인데,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주민들에게 영국 정부가 마시는 차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대하여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에 올라가서 쌓아놓은 차 상자들을 전부 바다에 버렸던 사건이다. 이 보스턴 티 파티 사건을 계기로 결국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현재에도 늘어나는 부동산 관련 세금이 큰 논란이 되고 있지만, 오늘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는 2015년도 담배 가격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대폭 인상시켰던 담뱃세이다.

금연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세수 증대의 목적도 강했던 당시의 급격한 담뱃세 인상으로 정부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고 일정 부분 해당 정부의 불행한 결말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어떤 정부이든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기에 세금을 올렸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마침 담배의 경우에는 국민의 건강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금을 높게 책정하여 소비를 줄인다면 세수도 증대되면서 국민 건강도 증진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2015년의 담뱃세 인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담뱃세 인상 결정과정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대개 10년 가까이 담뱃세가 전혀 오르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엄청나게 상승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이전에 담배 가격은 2004년부터 계속 동일하게 유지되었기에 2015년의 가격 상승은 11년만이지만 80%의 대폭적인 인상이었던 것이다.

담배가 아닌 어떤 소비 상품이라도 예고 없이 이렇게 급격히 상승하는 것은 경제 생활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갑자기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얼마나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며 개별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줄 것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혼란과 피해를 막기 위해서 정부는 어떤 입시 제도의 변화이든 3년의 예고 기간을 두어 혼란을 방지하고 있다. 담뱃세도 국민들이 사전에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그 변화가 급격하지 않은 수준에서 인상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경제학자들이 자주 제안하는 조세제도가 물가연동형 세금이다. 즉 매년 물가 상승률을 기준으로 하여 세금 올리는 방법이다. 매년 전반적인 물가 상승과 유사한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방법이므로 소비자들에게 예측이 가능하고 큰 부담이 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내년부터 술에 부과되는 주세에 적용이 결정되어 있다.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10년마다 급격한 증세를 하게 되면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주게 되어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데 이를 극복하고 담뱃세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물가연동형 세금이라는 사실이다. 담배와 같이 국민 건강에 해로운 상품은 세금을 높이는 것이 정답인데 정치적 부담 때문에 높이지 못하는 상황을 물가연동제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급격한 담뱃세 인상으로 반짝 금연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한편 10년간 담배의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동안 금연의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을 같이 고려해보면 점진적인 세금 인상이 금연에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또한 급격한 담배 가격 인상은 차익을 노린 사재기 또는 더 나아가 불법 밀수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점진적인 물가연동형 인상은 이런 현상을 현격히 감소시킬 수 있다.

세금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미세한 사항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자 담배의 발전이 그 중 하나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담배이긴 하지만 인체에 미치는 해로움이 많이 경감된 전자 담배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담배와 전자 담배에 대해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차별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이제부터 고려해 봐야할 과제이다.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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