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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아마존 '아마존 같은' 쿠팡·네이버 두고 11번가 투자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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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아마존에게 11번가는 본선일까, 연습일까. ‘아마존 닮은’ 쿠팡·네이버가 쇼핑 왕좌를 놓고 각축하는 중에, 11번가의 손을 잡은 아마존의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11번가(左), 아마존(右)

11번가(左), 아마존(右)

무슨 일이야

아마존이 SK텔레콤의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와 협력해 조만간 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에, 규모와 대상이 의외라는 얘기가 나온다. 11번가를 통한 성장보다는, 인수합병(M&A) 전 ‘한국 시장 테스트’ 목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 국내 쇼핑은 네이버·쿠팡 양강 체제다. 11번가는 한 단계 아래에서 이베이코리아·위메프 등과 경쟁한다. 유효상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지 1, 2위 사업자를 활발히 인수해 온 아마존의 행보로 보면 어색한 면이 있다”고 했다.
· 11번가에서 아마존 상품을 구매하는 해외 직구가 곧 열리지만, 본격 사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마존은 사업을 철수한 중국에서도 해외 직구는 운영한다.
·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의 이번 투자는 쿠팡 같은 업체를 인수하기 전에 가격 적정성 등을 보려는 시장탐색 비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게 왜 중요해

아마존은 ‘공급 망 전략’, ‘플라이 휠’(fly wheel: 한 번 가속도 붙으면 알아서 돌아감) 등 디지털 플랫폼의 성장 교본과도 같은 기업이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모두 힘든데 아무도 집에 안 가며’ 적자를 버틴 건 아마존처럼 되기 위해서다.
· G마켓·옥션 운영사인 이베이코리아 외에, 쿠팡·티몬·위메프는 모두 적자를 감수하고 몸집을 키웠다. 11번가가 상장을 준비하며 수익을 우선하자 지난해 흑자 전환했지만 매출은 줄었다.
· 아마존은 유통을 넘어 물류, 동영상 스트리밍(OTT), 금융까지 갖췄다. 커머스 시장의 압도적 1위로 생태계를 강화하고 락인(lock-in·잠금) 했기에 가능했다.
·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공산품은 쿠팡, 식품은 마켓컬리, 패션은 무신사 등으로 시장이 분절돼 있다”며 “이걸 누가 극복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아마존이 결정된다”고 봤다.

쿠팡과 아마존

불확실한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압도적 1위에 오른다는, 아마존의 ‘블리츠 스케일링’(Blitz Scaling) 전략을 국내에 본격 적용한 건 쿠팡이다.
· 네이버가 쇼핑의 시작(검색)을 틀어쥐었다면, 쿠팡은 ‘빠른 배송, 손쉬운 반품’이라는 쇼핑의 끝단에서 우위를 점했다.
· 쿠팡은 자체 물류 시스템을 갖췄을 뿐 아니라 한국 법·규제에 대응 경험도 있다. 로켓배송이 화물운수법을 위반했다는 택배업계의 소송에 휘말렸지만 승소했다(2018년 확정).
· 쿠팡은 지난 7월 싱가포르의 OTT ‘훅’의 소프트웨어 부문을 인수했고 지난달 정관 사업목적에 영상·음악을 추가했다. 멤버십에 동영상을 결합한 아마존의 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네이버와 아마존

네이버는 한국에서 아마존의 ‘플라이 휠’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로 꼽힌다.
· 아마존은 클라우드 사업(아마존웹서비스)에서 고수익을 올려 쇼핑·인공지능(AI)에 투자한다. 네이버도 검색·광고에서 축적한 기술과 돈을 쇼핑 플랫폼과 간편결제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 아마존은 2011년 시작한 입점 업체 대상 대출을 올해부터 금융사 골드만삭스와 함께한다. 네이버도 미래에셋과 협력해 자체 신용평가와 쇼핑 입점사 대출을 준비한다.
· 네이버는 약점으로 꼽히던 자체 물류·배송을 제휴로 풀었다. 지난달 네이버는 주식 교환으로 국내 1위 택배사 CJ대한통운의 3대 주주가 됐고 국내 배달 대행 1·3위(생각대로·부릉)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 유효상 교수는 “미국은 ‘구글은 검색, 아마존은 쇼핑’인데 네이버는 국내에서 검색ㆍ쇼핑 모두 1위라 더 강력한 락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금융 전문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은 미래에셋과 함께 금융 이력 없는 사업자들을 위한 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 네이버

네이버의 금융 전문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은 미래에셋과 함께 금융 이력 없는 사업자들을 위한 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 네이버

11번가와 아마존

11번가는 일단 구원투수를 만났다. 2~3년 내로 상장하거나 기존 투자자의 지분을 되사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 적자가 누적됐던 11번가는 2018년 국민연금, H&Q코리아(사모펀드), 새마을금고로부터 5000억원 투자를 받았다(지분 18.2%). 3~5년 이내에 상장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 업계에서 이번 아마존 투자를 두고도 ‘아마존에 유리한 조건이 걸렸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아마존이 11번가 지분을 순차 인수하는 방식으로 알려졌지만, 아마존이 11번가 인프라에 대형 투자까지 할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 ‘탈(脫)통신’을 선언한 SKT는 독자 승부 대신 플랫폼 강자와 제휴 전략을 펴는 중이다. 우버와 손잡은 모빌리티(티맵), 지상파 방송사와 손잡은 OTT(웨이브), 네이버와 협력한 앱마켓(원스토어) 등이다.

그 전엔 무슨 일이

· SK는 2017년 신세계·롯데와 11번가 지분 매각 협상을 벌였으나 무산됐다. SK 측이 11번가 경영권을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 아마존은 2004년 중국 전자상거래 2위 업체 ‘조요닷컴’을 인수해 현지 진출했으나 2019년 해외 직구와 클라우드 사업만 빼고 철수했다. 알리바바ㆍ징둥 등 현지 업체의 자체 물류와 간편결제(알리페이)에 밀렸다.

· 아마존은 2000년 일본에 진출해 2007년 회원제를 시작했고, 2017년 신선식품 2시간 내 배송을 시작했다. 일본 이커머스 시장은 라쿠텐과 아마존재팬 양강 체제다.

더 알면 좋은 점

· 11번가의 이상호 대표는 네이버ㆍ다음의 음성검색과 SKT의 인공지능(AI) 스피커 ‘누구’ 개발을 이끈 음성 처리 전문가다. 2018년 취임하며 “전자상거래에 AI를 접목해 ‘한국형 아마존’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 아마존은 AI 스피커 ‘에코’로 미국 내 스마트 스피커 시장 1위 업체이지만, 쇼핑 주문에 활용하는 ‘보이스 커머스’에는 기대만큼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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