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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월 北대화 재개 노리는 정부…"바이든 측에 韓대북정책 설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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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오찬회담으로 진행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한·미 장관 회담을 점심으로 대체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승패가 기울었지만, 여전히 대선 승복을 하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방미 강경화, 바이든측 접촉 北대화 동력 살리기 #'강경화 미국-박지원 일본' 카드 동시에 띄워 #내년 7월 도쿄 올림픽 전후 재개 목표한 듯 #"文-트럼프 그대로 가면 득 아닌 독" 우려도

강 장관 입장에서도 조 바이든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이상, 방미길에 바이든 측과의 면담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다. 차기 정부의 핵심 인사이더를 면담하기 위해 각국에서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강 장관도 이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국방부 장관 물망에 오르는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정책차관을 접촉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외교부는 확인하지 않고 있다.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지 않았고 형식상 폼페이오 장관의 초청으로 방미한 것인 데다, 바이든 측도 외국 사절을 공개적으로 만나는 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측으로선 대통령직 인수위팀이 꾸려진 지 얼마 안 됐고, 정권 이양 시기 외국사절을 공개적으로 만나지 않는 정치 관행도 있다고 한다. 면담이 이뤄지더라도 한·미 모두 끝까지 공개 안 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한편으로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측을 조기에 접촉하는 것이 반드시 득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앞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정부의 전반적인 대북정책을 돌아보고 방향성을 수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했다.

'종전선언 입구론' 논란을 낳은 문 정부의 대북정책이나 접근법을 수정하지 않은 채 트럼프 행정부에서 추진하는 대북정책을 그대로 바이든 측에 입력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 소식통은 “강 장관이 바이든 측을 만나면 대북정책 등 핵심적인 현안 위주로 설명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관여 기조를 바이든 정부에서도 유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내년 7월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 전후 북·미, 남북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고 나온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특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특파원단]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고 나온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특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특파원단]

앞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0월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을 만나 정부가 마련한 도쿄올림픽 구상을 제안했다. 사실 이 같은 논의 내용을 언론에 밝힌 건 오브라이언 보좌관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었고 한·미 간 대북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해온 건 주로 한국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제안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가 8개월 뒤 도쿄올림픽을 대화 재개 시점으로 고른 것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남북 정상회담(4월)→북·미 정상회담(6월)으로 이어진 전례를 재현하려는 것일 수 있다. 2017년 '화염과 분노'의 긴장 관계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당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한하며 극적으로 풀려갔다. 현실적으로 미국 대선 일정과 정권 교체 가능성도 계산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면 정부가 도쿄올림픽에 북한대표단 참석을 제안하면서 북측과 대화를 재개하는 시나리오를 추진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런 구상이 먹히려면 미국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적인데, 강 장관이 바이든 측과 이 같은 논의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대선 직후 방미를 강행했을 수 있다.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중시하고 있다는 시그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강경화 방미-박지원 방일'이 비슷한 시기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 취임에 맞춰 방일해 일본 정부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표면적인 현안은 강제징용-수출규제 문제 해결과 연내 한·중·일 정상회의 스가 총리 초청 문제이지만, 큰 그림에선 정부가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의 북측 참여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려는 것일 수 있다.

문 정부 인사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주재 한국대사로 발령낸 것도 의미심장하다. 노 전 차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혀 좌천됐다가 문 정부 들어 복권됐고, 이후 정권의 측근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노 대사가 정식 부임하면 도쿄 올림픽 개최와 관련, IOC 본부 인사 및 북측 대표단 접촉이 주요 임무가 될 수 있다.

통상 미 행정부가 새로 출범하면, 지난 정권의 대외정책을 리뷰하는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고 한다. 바이든 정부의 내각이 빨리 구성돼야 국무부 장관-대북정책특별대표 라인도 재정비된다. 이 기간이 늦춰질수록 바이든 정부가 대북 관여를 하는 시기도 늦춰질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제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 후보. [AP=연합뉴스]

미국 제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 후보. [AP=연합뉴스]

물론 트럼프 행정부도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한 건 1차 북·미 정상회담(2018년 6월 12일) 이후인 2018년 9월이었다는 점에서 바이든 내각의 구성 시기가 핵심 변수는 아닐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승리 연설과 트윗 글 등을 통해 정책 일순위로 대내적으로는 코로나19 대응, 대외적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를 꼽았다. 정부가 최대한 빨리 구성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뒤집은 파리기후협약ㆍ이란핵합의(JCPOA) 복귀가 우선적인 대외정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관여 시기는 북한에 달렸다는 반론도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판단을 그르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중대 도발을 하면 바이든 정부가 유엔 안보리 등 추가 제재를 시도하면서 2017년과 같은 긴장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시기는 1년 이상 늦춰질 수 있다.

정효식·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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