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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렉슬 2억에 월 270만원…월세, 직장인 월급수준으로 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임대차3법 시행 이후 확산하는 전세난으로 서울 아파트 월세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의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임대차3법 시행 이후 확산하는 전세난으로 서울 아파트 월세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의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서울 아파트 전세난이 월세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전셋값이 오르다 못해 거의 사라지자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에서는 월세가 직장인 월급 수준인 200만~300만원대로 오른 아파트가 부쩍 늘었다.

8일 KB국민은행의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101.6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상승세는 임대차 2법이 시행된 7월 말 이후 가팔라졌다. 월세지수 상승률은 연초 이후 7월까지 지난해 말 대비 0.4%를 넘지 못하다가 9월 이후 두 달 연속 1% 이상 올랐다. 국민은행의 월세지수는 서울 내 중형(전용면적 95.9㎡) 이하 아파트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지표다.

올해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래미안블레스티지, 일주일새 월세 50%↑  

월세는 전세 매물이 가장 빨리 사라진 강남 아파트 중심으로 올랐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전용 84㎡, 16층)는 지난달 15일 보증금 10억원, 월세 120만원(국토부 실거래가)에 반전세로 계약됐다. 6일 뒤 같은 면적의 아파트(19층)가 보증금(10억원)은 그대로 두고 월세를 60만원 더 올려 180만원에 거래됐다. 일주일 사이 월세 부담은 50% 상승했다.

이뿐이 아니다. 전용 60㎡이하 소형 아파트 중에서도 월세가 200만~300만원까지 오른 매물이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전용 59㎡)은 지난달 26일 보증금 2억원에 월세 270만원에 손바뀜했다. 석 달전만해도 보증금 5억5000만원, 월세 100만원에 거래됐던 아파트다. 보증금을 2억원으로 낮추는 대신 매달 내는 월세 부담은 기존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도곡렉슬 인근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이 단지는 3000가구인데 전세 물건은 없고, 월세 물건도 2~3개뿐”이라며 “매물이 워낙 귀하니 집주인들이 잇달아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더 높여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품귀에 월세로 발길 돌린 세입자  

매물 감소는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 조사결과 8일 현재 서울 아파트 월세 물건은 1만1342건이다. 임대차법 시행 직전(7월 30일 2만3525건) 대비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전세 매물을 합쳐도 전ㆍ월세 물건은 2만3595건으로 7월 말(6만2398건) 이후 60% 이상 감소했다. 기존 세입자는 계약갱신으로 버티고, 집주인은 실거주에 나서거나 물건을 거둬들인 탓에 전세 품귀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사면초가에 몰린 세입자가 월세로 발길을 돌리면서 월세도 오르는 것이다.

정부도 뾰족한 대책 없어, 임대차 시장 불안 가속화  

정부가 전세난을 풀어낼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도 임대차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임대 주택을 통해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고, 월세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임대 공급을 늘리거나 전세 수요를 분산시키는 정책만으로 전국으로 불붙은 전세난을 잡기는 역부족이다. 지난 9월 세입자의 월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전ㆍ월세 전환율을 기존 4%에서 2.5%로 조정했지만 이조차 신규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특출난 (전세) 대책이 있으면 벌써 정부가 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내년 상반기까지 서울 아파트 전ㆍ월세가 오를 것으로 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며 “여기에 공시가격 인상으로 세금 부담이 많이 늘어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까지 커졌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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