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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득표수 넘고도 진 트럼프…바이든, 그 지지자에게도 손 내밀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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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통합의 대통령'을 선언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도 손을 내밀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통합의 대통령'을 선언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도 손을 내밀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승리 연설을 통해 미국인에게는 화합과 치유의 시대를, 세계인에게는 미국의 국제무대 복귀를 알렸다.

바이든 '승리연설'서 "미국이 치유해야 할 시간" #최다 득표 당선했지만 트럼프는 최다 득표 패배 #세계 향해선 "다시 존경받는 미국 만들 것" #"상대방 공격하지 않고 손 내민 것은 좋은 출발"

그는 이날 오전 승리 확정 후 약 9시간 만인 오후 8시 38분(현지시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마련된 야외무대에 올랐다. 일성은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나는 분열하지 않고 통합하는 대통령, 붉은 주와 푸른 주를 가르지 않고 미합중국 전체를 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붉은 주는 공화당, 푸른 주는 민주당이 우세한 지역인데, 두쪽으로 갈라진 미국을 상징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17분가량의 길지 않은 연설 상당 부분을 화합하자는 메시지로 채웠다. 그는 "이제는 미국이 치유해야 할 시간"이라면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편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혹한 수사를 그만 하고, 열기를 낮추고, 서로를 마주 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지지자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나는 자랑스러운 민주당원이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 통치할 것"이라며 "나를 위해 투표한 사람 못지않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나도 선거에서 여러 번 져봤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실망감을 이해한다"면서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서로에게 기회를 주자"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악마로 만드는 이 암울한 시대를 여기서, 그리고 지금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과 공화당 간 협력 부재는 우리가 한 선택이었다"면서 "협력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면, 협력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인들은 우리에게 협력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나는 그것을 선택하겠다. 의회 내 민주당과 공화당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당선인은 승복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승자가 발표된 날 패자가 승복하지 않은 경우는 1896년 이후 처음이라고 미 공영방송 NPR은 전했다.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처럼 바이든 당선인 앞에 놓인 가장 큰 숙제는 전례를 찾기 힘들만큼 극심하게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바이든은 이날까지 총 7520만 표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7080만 표를 얻었다.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낙선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는 이전 대통령 선거까지 최대 승리로 꼽히는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6950만 표)을 지지했던 유권자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바이든(50.6%)은 득표율에서 트럼프(47.7%)를 2.9%포인트 앞서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세계인을 향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선을 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의 영혼을 회복해야 한다"며 "미국이 다시 세계로부터 존경받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에서 라운딩을 하던 중 바이든 승리 소식을 들었다. 직후 성명을 통해 "이 선거는 끝나려면 멀었다. 올바른 승자가 나올 때까지 법적 다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아직까진 승복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위터에서도 "내가 선거에서 이겼다. 합법적인 표 7100만 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골프장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이든 당선 축하 인파와 마주쳤고, 사람들은 '패배자'라고 외치며 야유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바이든 후보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워싱턴을 비롯해 뉴욕,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등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축하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춤을 추며 바이든 당선을 기념한 이들은 대부분 바이든 지지자였다.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만난 공무원 앤 스웰링턴은 "4년 전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충격에 엉엉 울었다"면서 "과학과 팩트가 다시 존중받는 시대가 온 것을 축하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교사 새러 모리니는 "4년을 견디니 이런 날이 왔다"면서 "미국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반쪽 지지를 받고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대학생 키넌 그린(19)은 "이제부터는 선출된 공직자들 몫이다. 국민을 진정시키고, 화합 메시지를 내놓고, 모두를 위한 정책을 펴야 또 다른 혼란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댄서인 조나선 토머스(31)은 "바이든 대통령이 모든 사람에게 정의롭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차츰 화합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남부 애리조나부터 북부 펜실베이니아까지 주도(州都)에 모여 바이든 당선을 부인하는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시위를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이 선거를 조작해 자신의 승리를 가로챘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데서 나온 명칭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이 어려운 과제에 놓였지만,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데이비드 루블린 아메리칸대 정치학과 교수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양당이 당내 가장 극단적인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타협할 의사를 가져야 한다"면서 "바이든이 승리 연설에서 보여줬듯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것은 좋은 출발"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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