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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증세의 눈가림…재산세 3년 감면해도 결국 배로 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김흥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왼쪽부터)과 박재민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이 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부동산 공시지가 현실화 방안 등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흥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왼쪽부터)과 박재민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이 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부동산 공시지가 현실화 방안 등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는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시세 반영률) 로드맵 수립과 조사 주체 역량 제고와 같은 공시제도의 근본적 개선방안을 사회적 공론화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고가 부동산의 공시가격 현실화율만 콕 짚어 대폭 올리자 후폭풍이 거셌던 터다.

[현장에서]공시가 현실화율 90% #3일 청와대 지시로 급하게 발표 #'깜깜이 산정' 문제는 개선안돼 #공론화 과정도 없는 '서민 증세'

과세와 직결된 공시가격의 들쭉날쭉 고무줄 상승에 깜깜이 산정 논란까지 연이어 터졌다. 그래서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얼마나 어떻게 올리고 산정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이 제고 방안이다.

11개월 뒤인 지난 3일 국토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까지 올리겠다는 로드맵 확정안을 벼락처럼 발표했다. 담당 기자들에게 당일 오후 4시에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겠다며 안내 문자를 3시간 전인 오후 1시 무렵 보냈다. 그 시각 브리핑 발표자 중 한 명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서울 출장 중이었다. 갑자기 잡힌 세종시 국토부 청사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해 주택토지실장도 부랴부랴 KTX를 타야 했다. 청와대가 급히 브리핑 지시를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공론화 과정은 형식적이었다. 국토부는 지난달 27일 공청회를 열고 국토연구원의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한 현실화율 80%, 90%, 100% 안 중에서 논의하자고 밝혔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공청회가 열리기 전, 더불어민주당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실화율 90%’를 기정사실로 한 채 말을 보탰다. 법적 절차로써 공청회를 열었을 뿐이다.

야당의 반발 속에도 속전속결로 임대차 2법을 상정ㆍ통과ㆍ시행시킨 여당다운 속도전이었다. 국민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정치가 된 지 오래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정부는 재산세를 포함해 60개 분야의 세금 및 부담금의 산정 근거로 쓰이는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3일 밝혔다.[연합뉴스]

정부는 재산세를 포함해 60개 분야의 세금 및 부담금의 산정 근거로 쓰이는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3일 밝혔다.[연합뉴스]

공시가격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산정 기준의 투명성이었다. 공시가격이 정확하지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으니, 조사ㆍ산정ㆍ평가방식ㆍ시세 등 가격 결정요인의 근거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지난 5월 감사원이 발표한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용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지난해 개별 주택 공시가격이 부실하게 산정됐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땅값ㆍ집값을 합한 개별주택 공시가격보다 땅값만 산정한 개별 공시지가가 더 높은 경우가 전국 22만8475가구에 달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표준주택의 공시가를 기준으로 지자체가 산정하는 개별주택 공시가를 뜯어보니 문제투성이라는 지적이었다. 공시 가격은 재산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 60개 세금ㆍ부담금의 산정 근거로 쓰인다.

공시가격을 주축으로 한 조세 제도의 신뢰성은 바닥을 쳤는데,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에 따라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치만 앞세우고 있다. 결국 증세를 위한 로드맵이자, 서민증세가 목표였다는 비난에 정부는 6억원 이하 주택의 재산세율을 내년부터 2023년까지 0.05%포인트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3년간의 한시적인 조치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이 보유세 부담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중계동 무지개아파트(최근 실거래가 6억원, 공시가 2억6800만원) 전용면적 59㎡는 내년 재산세가 42만원으로 올해보다 3만원가량 줄어든다.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 90%가 되는 2030년 재산세는 98만원가량 된다. 올해의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결국 공시가격 산정의 정확성과 객관성 확보라는 본디 목표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증세뿐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라 모두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폭탄은 고가 부동산을 보유한 부자와 서민층을 가리지 않는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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