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北 인권개선 운동 폴러첸

중앙일보

입력

탈북자의 숫자가 급증해 중국 주재 우리 공관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인권탄압과 경제난을 피해 북한을 벗어나 남한으로 오겠다는 탈북자들의 아우성이 중국 전역을 메아리친 지 10여년 만의 일이다.

북한의 현재 상황이 어떻길래 탈북자들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일까. 탈북자 급증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독일인 의사로 북한에 들어가 의료봉사활동을 벌이다 추방된 후 북한 인권 개선에 매진하고 있는 행동하는 의사 폴러첸을 만나 탈북자 문제와 북한 인권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달 23일 국회 행자위의 경찰청 국정 감사장에서 "서울이 평양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말인가.

"소리 지르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북새통이 평양과 똑같았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인권 문제를 놓고 좀 과격한 발언을 했더니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나에게 호통치고 윽박지른 적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을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국회의원들의 질문 태도 등도 평양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당신은 지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반북 시위를 벌여 북한 기자단과 충돌을 일으켰다. 당시 사건을 놓고 북한 기자단의 과잉대응을 질타하는 여론에서부터 국제 스포츠 행사장을 정치로 오염시키는 부적절한 시위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여론이 일었다. 어떤 의도로 그곳에 갔는가.

"북한 인권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스포츠를 정치로 오염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선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이미 스포츠를 정치로 오염시키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카운터 프로파간다(역선전)의 의도로 대응한 것뿐이다. 선전 도구로 전락한 북한 응원단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완벽에 가까운 연습을 하고 '로봇 미소'를 익힌 사람들이다.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세계 각지의 대학생들이 이들을 보고 북한의 실상을 잘못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예전에 히틀러 집권 시절 침묵했던 조국의 과오를 생각하면 독일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내가 자진해 트러블메이커로 나선 것이다."

-당신은 최근 들어 북한 고위 인사들의 탈북이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그 근거가 궁금하다.

"워싱턴을 자주 방문하는데 1년 전 그곳에서 미국 고위 관리들을 만났다. 그들은 북한의 고위 인사가 탈북한다면 미국으로 불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수용소 등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고 인력을 고갈시켜 북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북한 고위 인사의 탈북이 자금과 연결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그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또 지난 5월까지 4년 동안 북한에 머물렀던 동료 말에 따르면 북한 사회는 매우 부패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고위 인사, 특히 외무성 관리나 외국출장이 잦은 관리들이 새로운 기회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지금 북한은 마치 옛 동독이 몰락하기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7월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탈북자 처리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미국 내부에서 탈북자의 미국 입국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실현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나.

"워싱턴에서 제임스 켈리 차관보나 존 볼턴 차관을 비롯해 많은 관리를 만나 그와 같은 미 국무부의 입장을 확인했다. 현재 북한은 코너에 몰려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6자 회담에서 워싱턴의 끊임없는 질책, 일본의 납북자 문제 제기, 동맹국이었던 중국과 러시아의 변화 등을 통해 확인됐다. 중국도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 러시아도 최대 20만명의 탈북자들을 수용할지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북한.중국 국경지역에 경찰 대신 군인을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나.

"사실 이 문제가 무엇보다 걱정된다. 과거처럼 경찰이 국경지역을 맡고 있을 때는 탈북자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군인은 다르다. 그들은 치안유지보다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의 처리 과정이 강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북한을 '골칫덩어리'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권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아주 세련된 매너로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하도록 설득한 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를 거절했다면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강요했을 것이다. 중국이 노리는 것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나 풍부한 지하자원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사업가들을 만나면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신은 중국에서 탈북자의 기획 망명 등을 주도했다. 국제적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오히려 중국 정부의 단속 강화로 나머지 대다수 탈북자가 고통받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 비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상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같은 독재자를 다룰 때는 그만한 위험은 언제든지 있게 마련이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 히틀러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심지어 가족의 안전까지도 내팽개친 사람들이 있었다. 2천2백만명의 북한 동포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의 귀퉁이에 탈북자들의 망명기사가 보도돼 다른 탈북자들에게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북한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부 수용소에서 탄압이 줄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대량 살상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큰소리를 내야 한다."

-탈북자들을 위해 현재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있나.

"중국.방콕 등에서 산발적으로 보트피플 프로젝트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별 기고를 하거나 책을 쓰고 받는 인세, 교회나 다른 인권 단체 및 후원자들로부터 거둔 돈으로 충당하지만 역시 늘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큰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뭔가 북한 사람들을 위한 정식 기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우리 단체들을 보면 늘 계획이 즉흥적이라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건 이라크처럼 단순히 병원이나 건물을 재건축해주는 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이를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의사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다시 북한에 들어가 병원을 세워 아이들을 치료하는 게 꿈이다."

-북한에 소형 라디오를 담은 풍선을 띄워 보내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1999년 북한에 있을 때 북한에서 알게 된 사람이 중국에 나갔다 올 때 라디오 하나를 사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당시 가지고 있던 내 라디오를 줬다. 한참 후에는 내가 사무실에서 위성방송을 몰래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보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 주민들은 정보에 굶주려 있다. 풍선 라디오 6백개로는 어렵겠지만 1백만개 정도를 북한에 보내면 틀림없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도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나.

"예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을 보자. 도심에서 떨어진 금강산에서 얼굴 한번 보고 헤어지는 건 차라리 아예 못 보는 것보다 더 잔인하다. 북한이 정말 이산가족 상봉에 의지가 있다면 가족끼리 어떻게 사는지 집까지 다 찾아가게 해야 한다."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나. 인권운동가인가, 아니면 의사인가, 정치지향적 행동가인가, 일부에서는 심지어 당신을 극우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게 아니라 뭔가 혼란을 일으켜보자는 쪽이다. 너무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도를 한꺼번에 해보자는 것이다. 북한을 다루는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으냐. 파월 국무장관은 온건파,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강경파, 켈리 차관보는 중립파 등 의견 충돌을 하지만 상호작용을 하면서 외교 전략을 짜고 있다. 따라서 한국도 포용정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인권 문제 등도 함께 제기한다면 매우 바람직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궁극적으로는 의사다."
만난 사람=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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