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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못 말리는 '이것' 사랑, 점점 더 뜨거워지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올해 초, '닥터 코퍼'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구리 수요가 확 줄어든 탓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통신=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통신=연합뉴스]

닥터 코퍼(Dr.Copper)는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하는 특성을 가져 산업 전반에 두루 쓰이는 금속 '구리'를 일컫는 말이다. 쓰임새가 워낙 많아 구리 가격의 변동을 보면 세계 경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박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문가들은 구릿값이 오르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 짐작하고, 떨어지면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 점친다.

이런 '닥터 코퍼'가 지난봄 찬밥 신세가 된 건,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절반을 소비하는 중국이 코로나19로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모든 경제활동이 멈추자 구리 가격은 지난 3월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며 구리의 몸값은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올해 구리 가격 변화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올해 구리 가격 변화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중국 정부가 나라 전역에 도로·교량·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건설하는 경기 부양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광둥성에서만 올해 공공 의료 시설과 통신, 교통 인프라에 약 1000억 달러(약 114조7000억원)를 지출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수요는 다시 늘었는데 공급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가격은 폭등했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와 2위 생산국 페루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어 광산들이 폐쇄된 탓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중국 정부의 '구리 사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왜일까.

 중국 산시성에 있는 태양광 발전 시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산시성에 있는 태양광 발전 시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친환경 재생 에너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데, 태양열이나 풍력 에너지 설비에 핵심적인 금속이 바로 '닥터 코퍼'라서다.

뿐만 아니다. 전기 자동차 생산에도 구리는 필수 요소다. 전기 모터는 물론 충전소 설비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이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를 달리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데, 구리가 없으면 이 모든 '큰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중국 저장성 전기차 충전소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저장성 전기차 충전소 [신화통신=연합뉴스]

흥미로운 건, 국제사회가 중국의 '뜨거운 구리 사랑'을 유심히 살피는 이유가 비단 당장의 구리 가격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된 이후다. 각국이 앞다퉈 '친환경 에너지'를 기치로 내걸고 경제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이 지난 상반기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구리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 내다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닥터 코퍼'를 더욱 갈구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문제는 구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질 텐데, 칠레·페루·호주 등 주요 구리 생산국들은 핵심 고객인 중국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단 점이다. 구리를 생산하는 곳도, 수입을 늘리려는 나라도 중국과 부딪치는 일을 피할 수 없을 거란 뜻이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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