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신장 이식 고3아들 병상서 논술

중앙일보

입력

27일 오전 11시40분쯤 서울대병원 장기이식 병동.

병상에 누운 어머니 이미숙(49.서울 구로구 개봉동)씨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 아들 근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전날 5시간의 대수술로 어머니에게 왼쪽 신장을 떼어준 최근호(18.서울 양천고3)군은 막 자신의 병실에서 대입(경희대 이학부) 논술시험을 치르고 오는 길이다. 자꾸 구역질이 나 진통제 주사바늘을 뺀 채 본 시험이었다.

그랬더니 머리가 어지럽고 수술받은 왼쪽 옆구리가 너무 아팠다. 그렇게 두시간반 동안 논술과 면접을 치른 근호는 그래도 "시험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 李씨는 지난 6월 만성 신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선 빨리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중장비 기사인 남편(최종갑.51)의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인 데다 입시생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통원치료로 근근이 버텨나갔다.

그러던 李씨는 지난달 2일 끝내 쓰러졌다. 근호의 수능시험 일주일 전이었다.

근호는 생전 처음 아버지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에 갔다. 수능을 치른 근호는 "엄마한테 신장을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가족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조직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이식 가능'.

얼마 뒤 경희대 입시 1단계를 통과한 근호에겐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논술.면접고사가 이식수술 다음날로 잡힌 것이다. 한달 전부터 약물투여 등으로 수술 준비를 해온 모자(母子)였기 때문에 수술날짜를 연기하는 건 곤란했다. 李씨의 상태는 자꾸 나빠지고 있었다.

근호는 "엄마가 더 중요하다"며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李씨는 근호 몰래 경희대에 전화를 걸었고, 경희대측은 '병실 시험'을 배려해줬다.

근호의 꿈은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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