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기꾼" 니콜라 vs 테슬라, 비슷했지만 뭐가 달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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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vs 니콜라, 엇갈린 운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테슬라 vs 니콜라, 엇갈린 운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일론 머스크는 완전 사기꾼이다.”  

뉴욕포스트 2018년 6월21일자에 실린 기사 헤드라인이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테슬라가 그해 출시한 모델X 차량이 배터리 화재를 일으켜 운전자가 사망한 것과 관련 테슬라의 안전성을 문제 삼았다. 머스크의 공격적 언행을 두고도 “CEO 재목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사실 테슬라와 머스크에 대한 비난은 2003년 창업 이후 계속돼왔다.

‘제2 테슬라’라고 불리는 미국 수소 전기차 업체 니콜라의 트레버 밀턴 CEO가 사기 논란에 휘말려 사임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데자뷔’라는 표현이 나오는 배경이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사진은 지난해 6월 한 게임 관련 컨벤션에 참석했을 때다. 로이터=연합뉴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사진은 지난해 6월 한 게임 관련 컨벤션에 참석했을 때다. 로이터=연합뉴스

테슬라가 창업 5년 뒤인 2008년 내놓은 첫 차량 로드스터는 순수 테슬라 기술이 아니었다. 영국 자동차 회사인 로터스의 슈퍼카 앨리스에 2차 전지를 접목했다. 테슬라의 기술력엔 의문부호가 붙었지만 2010년 6월 말 상장한 테슬라의 주가는 19달러(현재 환율로 약 2만2100원)에서 같은 주 마지막 거래일에 29.90달러로 57% 상승했다.
이를 두고 2010년 7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슬라가 생산한 자동차가 주가 만큼이나 잘 굴러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테슬라의 미래는 밝다”는 기사를 썼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주가가 폭등하는 기현상에 대한 기사였다. 니콜라 역시 자체 제작 트럭을 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가가 지난 8일 하루에만 40% 뛰었다.

22일 현재,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사기 논란에 대처하는 머스크와 밀턴의 태도는 180도 다르다. 머스크는 맞불작전을 놓고 양산 체계를 갖춰갔다. 한국 시각으로 23일 오전 5시 30분으로 예정된 ‘배터리 데이’를 앞두고 또 다른 도약을 꿈꾸는 중이다. 니콜라의 밀턴은 사기 논란에 밀려 사임했다.

지난해 12월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트레버 밀턴 니콜라 CEO.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트레버 밀턴 니콜라 CEO. 로이터=연합뉴스

니콜라 주가는 21일 뉴욕 기술주 중심 나스닥(NASDAQ)에서 19.33% 폭락한 27.58 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밀턴 CEO의 사임을 사기 의혹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한 시장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다. 불똥은 태평양 건너 한국에도 튀었다. 미국 등 서구 국가의 주식에 투자한다는 의미로 ‘서학 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들이 니콜라를 최근 집중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22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니콜라 주식 보유 규모는 지난 21일 기준 1억5066만달러(약 1700억원)에 달한다.

사기였을까. 니콜라가 공개했던 수소 트럭. 한화그룹도 니콜라에 투자해 울상이다. [사진 한화그룹]

사기였을까. 니콜라가 공개했던 수소 트럭. 한화그룹도 니콜라에 투자해 울상이다. [사진 한화그룹]

니콜라 폭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공매도 전문 투자그룹인 힌덴버그 리서치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니콜라가 실제로 수소 트럭을 생산할 기술력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속였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니콜라 측이 실제로 힌덴버그 측이 보낸 질문지의 문항 중 다수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데 있다. 힌덴버그 측은 니콜라가 기존에 공개했던 트럭 시험모델의 질주 영상이 사실은 동력으로 주행한 게 아니라 내리막길을 굴러갔을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니콜라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밀턴 CEO는 “니콜라 폭락으로 공매도 이득을 보려는 투기 세력의 계략”이라며 반발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증폭했다. 테슬라처럼 다양한 라인을 구축하며 전기차 영역을 확고히 구축할 것이란 신뢰를 주지 못했기에 니콜라는 현재 사상누각 신세다.

지난 19일 독일 베를린의 테슬라 공장 건설 현장. 독일은 테슬라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공장 추가 건설은 테슬라의 자동차 양산에 청신호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독일 베를린의 테슬라 공장 건설 현장. 독일은 테슬라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공장 추가 건설은 테슬라의 자동차 양산에 청신호다. 로이터=연합뉴스

‘사기꾼’이란 의심에선 이미 벗어났고, 나스닥의 상징이 됐지만 테슬라의 앞날도 꽃길은 아니다. 블룸버그는 21일(현지시간) 전기차 소비세가 전세계적으로 꺾이고 있다”며 “‘그린 뉴딜’이라는 국가 정책을 행하고 있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각국에서 전기차 소비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테슬라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경제전문매체 배런스도 이날 “배터리데이를 전후해 테슬라의 주가 변동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으니 투자자들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터리데이를 이익 실현 기점으로 삼으면서 투매가 쏟아지고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다. 배런스는 이어 “테슬라의 주가 변동성은 다른 주식보다 4~5배는 더 크다”며 “테슬라 투자자들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산업이 주류 산업이 되기까지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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