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수술 도와

중앙일보

입력

"마음껏 뛰놀 수 있게 돼 정말 좋아요." 14일 낮 서울 도봉구 쌍문동 주택가의 한 어린이놀이터.

이 동네 편혜수(5)양이 언니 혜연(8.초등2)양과 함께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다.

보름 전만 해도 혜수는 먼발치서 그네를 타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처지였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어지럼증까지 느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5일 서울대병원에서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뒤 혜수는 건강한 어린이로 돌아왔다.

혜수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식품회사가 10년째 펼치고 있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덕이다.

돌도 되기 전 사업에 실패한 부모가 집을 나가버린 뒤 이모(35)집에서 외할머니(65)와 함께 사느라 수술받을 형편이 못되는 사정을 딱하게 여긴 서울대병원 소아심장과 최정연(崔正衍.51)교수가 한국심장재단에 호소했고,혜수는 지난달 ㈜오뚜기의 1천번째 후원대상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오뚜기는 1992년부터 가난한 집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를 심장재단에 남몰래 지원해왔다.

창업자 함태호(咸泰浩.71)회장이 "열살 이전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되는 심장병 어린이를 돕자"며 시작한 일이다.그러면서 "남을 돕는 일을 밖에 자랑해선 안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매달 8일 심장재단에 5명분 수술비(1인당 1백50만원)를 전달했다. 그러다 "생명을 살리는 기업에 다니는 보람을 느낀다"는 직원들의 호응에 5년 뒤부터 지원금을 늘려왔다.

10년째인 올해에는 매달 열다섯명의 어린이가 수술비를 지원받고 있다.그동안 ㈜오뚜기가 지원한 심장병 기금은 16억원. 심장재단을 통해 수술받은 어린이의 17%가 '오뚜기 어린이'다.

환자가족에게조차 공개하지 않았던 이런 ㈜오뚜기의 선행은 혜수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오뚜기측이 오는 18일 1천번째 후원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혜수는 그날 충북 음성의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언니.오빠 등 44명과 함께 동요 합창을 할 예정이다.

이 회사 강신국(姜信國.59)사장은 "심장병으로 숨이 차 노래를 못하던 어린이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며 "돈 때문에 수술을 못받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돕겠다"고 말했다.

요즘 혜수는 "건강해졌으니 이제 엄마.아빠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

언니 혜연이는 이날 '동생을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편지를 ㈜오뚜기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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