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백해무익한 볼넷, 쓴약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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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투수가 홈런을 가장 많이 맞는 볼카운트는 3볼-1스트라이크다. 볼넷을 피하고 싶은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려다 보면 한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볼넷이 적기로 유명한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33)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볼넷을 주느니 차라리 안타를 맞으라’는 얘기를 수십 번씩 들었다”고 말했다. 투수에게 볼넷은 그 정도로 피하고 싶은 적이자 불안 요소다.

한 경기 최다인 16볼넷 기록 SK #참담함 딛고 강팀 자격 되찾을까

볼넷은 투수가 가장 비효율적으로 출루를 허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타자로서는 힘 한 번 쓰지 않고 걸어나갈 기회다. 반면 투수와 그가 속한 팀은 잃는 게 너무 많다. 볼넷이 쌓이면 투수의 투구 수가 많아진다. 수비 시간도 그만큼 늘어난다. 결국 야수의 타격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야구에 볼넷과 비슷한 개념이 처음 생긴 건 1863년이다. ‘볼로 판정된 공이 3개를 넘기면 타자를 1루로 보낸다’는 룰이 도입됐다. 투수가 일부러 계속 볼을 던져 타자를 자극하는 신경전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볼 3개’가 투수에게 너무 가혹한 제한이라는 불만이 잇따랐다. 1871년 그 숫자를 9개로 대폭 늘렸다.

이번에는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8개(1880년)→7개(1882년)→6개(1884년)→7개(1886년)→5개(1887년) 순으로 계속 바뀌었다. 1889년 4개가 된 뒤에야 비로소 룰이 정착됐다. 그 이후 130년 넘게 변하지 않고 있다.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최적값이 ‘볼넷’인 셈이다. 한 타자에게 볼 4개 이상을 던진 투수는 더는 정면승부 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9일 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투수들은 타자를 상대할 자격을 여러 번 박탈당했다. 인천 홈 경기에서 키움 히어로즈 타선에 볼넷 16개를 내줬다. KBO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14개였다. 한화 이글스가 2008년 9월 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기록했다. 차이라면, 그 경기는 연장 18회까지 진행됐다. SK는 그 절반인 정규이닝(9이닝) 동안 더 처참한 기록을 남겼다. 12년간 아무도 넘보지 못한 불명예 기록을 끝내 다시 썼다.

창단 이래 최악의 하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는 볼넷 16개와 함께 11연패도 기록했다. 창단 시즌인 2000년 7월 이후 20년 만에 팀 역대 최다 연패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날(8일) 15점을 뽑고도 16점을 내줘 역전패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다. 최하위 추락 위기까지 닥쳐왔다. 설상가상이다.

SK는 지난해 정규시즌 2위였다. 그 정도로 강팀이었다. 불과 한 시즌 만에 불가사의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 팀 전체가 목표 의식을 잃은 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SK가 참담했던 ‘16볼넷’의 역사를 어떤 동력으로 삼는가이다. SK 마운드, 아니 SK 선수단 전체가 강팀의 ‘자격’을 되찾는 모습이 보고 싶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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