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CBDC 도입 신중해야.. 사회적 합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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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 여러 국가가 잇따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올 들어 본격적인 연구 개발에 돌입했다. 한국은행은 내년 추진할 예정인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을 위해 외부 컨설팅 사업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CBDC를 도입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ㆍ중간 통화패권 다툼과 아시아 국가 간 경제력 격차와 갈등, 국내 CBDC에 관한 사회적 합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게 이유다. 

#원화 CBDC, 섣불리 발행 말아야

9월 9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주최로 열린 CBDC 온라인 포럼에서 이천표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원화 기반 CBDC 발행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보였다. 이 교수는 “CBDC가 등장하면 시중은행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이고, 심할 경우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기술적 측면에서도 데이터 분석 등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어 성급히 도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영세 계명대 특임교수도 ^소비자 편익 ^통화정책 유효성 ^국제화 기여 등 3가지 측면에서 볼 때 CBDC 도입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관측했다. 먼저 신용결제 기반의 현존 시스템보다 결제 수수료가 더 적거나 아예 없지 않는 한 소비자 편익을 증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 볼 때 만약 CBDC 초기 도입 시 이자를 부과할 경우 시중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신용창조 기능이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대로 마이너스 이자를 책정하면 소비 증진을 통한 내수 진작 효과는 있겠지만, 이용자들이 시중은행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 CBDC가 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화 기여 효과도 미미하다고 내다봤다. 국가통화 권력은 화폐의 디지털 여부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유럽과 달리,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규모나 역량 등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에 통화협력 명목으로 섣불리 해외 CBDC에 동참해선 자국의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 DCEP 동참, 신중한 검토 필요

이천표 교수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미 달러 기반 CBDC가 발행되기 전까진 중국 디지털화폐인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에 참여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중국이 DCEP를 출범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홍콩이 동참하도록 권유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홍콩 등 일부에선 이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은 DCEP를 아시아 지역 내 CBDC로 확장하기를 바라는데 이 경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CBDC를 발행하더라도 글로벌 영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기술적으론 문제 없어… 문제는 당국의 불분명한 태도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CBDC 설계에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을 활용하는 것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교수는 “디지털화폐 혹은 전자화폐를 개발할 때 여러 기술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중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며 “당국이 어떠한 요구 조건을 하더라도 대부분 구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당국이 어떤 성격의 CBDC를 내놓을지 대해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예컨대 CBDC의 주요 현안 중 하나인 익명성에 관해 당국이 어느 수준의 익명성을 보장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당국이 CBDC의 익명성을 강조할 것인지, 배제할 것인지 아니면 절충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이중 어떤 것을 택하든 간에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우려되는 점은 익명성을 중요시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라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의 행보로 봐선 익명성 보장을 우선순위로 둔다든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소극적인 것 같다”고 우려하며 “정부가 좀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CBDC를 설계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CBDC가 발행되는 건 국제사회 정서상 확실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천표 교수는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달러 CBDC가 의외호 빨리 추진될 거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며 “실제 원화 CBDC의 발행 여부를 떠나 기반 능력은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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