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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판사님 집회 허가는 잘못" 총리가 대놓고 사법부 때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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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는 25일 8ㆍ15 광복절 집회를 허가한 법원에 대해 “(방역이) 다 무너지고,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정 총리는 “법원 판단을 어떻게 보느냐”는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잘못된 집회 허가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박형순)는 보수단체들이 서울시의 ‘집회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정 총리는 “신고 내용과 다르게 (대규모) 집회가 진행될 거라는 판단은 웬만한 사람이면 할 수 있는데 (법원이) 놓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경제적으로도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법원을 비판했다.

이종배 통합당 의원이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가 있다. 총리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하자 정 총리는 “그 판사님이 코로나19가 확산되라고 그런 결정을 하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확진자가 생기고 전파되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며 “법원이 집회를 허가해 경찰이 광복절 집회를 막을 기회를 빼앗아버렸고, 코로나가 전국에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법원 때리기’를 거들었다. 추 장관은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비상상황에선 사법당국이 책상에만 앉아서 그럴 게 아니라 국민과 협조할 때는 협조해야 한다”며 “(법원이)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것으로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보수단체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주변에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보수단체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주변에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이날 예결위는 ‘태극기 부대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여당과 정부는 앞다퉈 광복절 집회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담임목사를 비판했다. 정 총리는 “감염병예방법이나 민법 조항을 통해 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상권까지 행사하는 게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며 “서울시의 방역 노력을 방해한 게 확인되고 불법 증거가 확보되면 최대한 구상권 행사를 하겠다”고 했다. 입원 치료비나 검사 비용 등 각종 비용을 물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법사위 참석에 앞서 예결위를 찾은 추 장관도 “(전 목사 등에게) 최대한의 법정형을 구형하도록 제가 지시했다”고 했다. 또 “이들이 근거 없는 낭설을 유포하는데,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행위는 국가 방역체계를 방해하고 국민 생명권을 위협하는 범죄로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집회가 신고될 때는 참가인원 100명,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집회로 허가한 것으로 안다. 불법 집회로 추정된다”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야당에선 “17일 임시 공휴일 지정 등 정부의 방심이 사태를 키웠다”고 공격했지만 정 총리는 “그때와 현재 상황이 다른데, 지금의 잣대로 (공휴일 지정이) 옳냐 그르냐를 재단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정 총리는 “임시공휴일을 정할 때는 사태가 안정됐었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면 정부가 그런 결정을 안 하지 않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교회 소모임 허용, 외식ㆍ숙박 소비쿠폰 배포 등 일련의 방역 완화 조치도 비슷한 취지로 해명했다. 정 총리는 “대통령의 완화 조치 승인과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을 연결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상황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는데 예상보다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게 온당한 것”이라고 했다. “방역 완화를 했던 문 대통령이 일주일 만에 초강경 대응에 나선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조해진 통합당 의원의 지적에는 “대통령은 (방역 완화 결정 당시) 큰 틀에서 보고를 받아 최종 승인했고, 완화 결정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자체적으로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날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정 총리에게 “정부가 방역을 정치에 너무 이용한다”며 “정치에 이용하면서 문제를 풀려다 보니 상황이 어려워진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 총리는 “저를 포함해 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인격을 걸고 말하니 믿어달라”고 답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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