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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한다고 파헤쳐 산사태” “비가 너무 많이 와 무너진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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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산을 깎아 만든 태양광 발전시설이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곳곳에서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로 무너진 충북 제천의 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11일 관계자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산을 깎아 만든 태양광 발전시설이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곳곳에서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로 무너진 충북 제천의 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11일 관계자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한 야산. 산비탈에 늘어선 태양광 발전시설 밑으로 흘러내린 토사가 길 위에 잔뜩 쌓여 있었다. 흙더미는 안전펜스를 밀어내고, 인근 농경지까지 내려와 벼와 밭작물을 덮쳤다. 200㎾급 태양광 발전 6개를 갖춘 이 시설은 3만여㎡ 부지에 2018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땅값이 싼 임야를 벌목해 수백 개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구조다.

주민·지자체, 태양광 영향 놓고 대립 #이틀간 비 300㎜ 쏟아진 제천 마을 #패널이 논·밭 밀려와 농작물 피해 #정부 “이번 계기로 안전기준 강화”

이 지역 주민 안모(69)씨는 “멀쩡한 산을 깎아 발전소를 만들더니 큰비에 흙탕물과 토사가 아래로 내려왔다”며 “평생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제천에는 지난 2일부터 이틀 동안 30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폭우 피해를 본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곳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도로 아래에 2m가 넘는 도랑이 움푹 패어 있는가 하면, 땅속에 있어야 할 콘크리트관이 훤히 보였다. 태양광 패널은 경사면 흙이 빗물에 씻겨나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빗물은 토사와 뒤섞여 400m 떨어진 마을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주민 안병동(63)씨는 “발전소를 지을 때 진행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산사태를 유발한 것 같다”며 “주민들 입장에선 태양광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천시 대랑동의 800㎾급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도 최근 내린 큰비에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 설비를 지지하던 토사와 태양광 패널 수십 장이 논으로 쓸려들어가 농작물에 피해를 줬다. 충주시 주덕읍 장록리와 앙성면 조천리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은 산사태까지는 아니지만, 산에서 쓸려내려온 흙과 자갈이 인근 농경지에 들어가 있었다. 발전시설 소유주 송모(53)씨는 “태양광 패널이 쓰러지지 않게 축대를 깊게 박고, 방수포로 바닥을 덮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야산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은 전국에 1만2721곳에 달한다. 이번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산사태를 유발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에 산림청은 10일 “6월 이후 산사태 피해 건수(1079건)와 비교하면 태양광 시설 관련 산사태 피해(12건)는 1.1% 수준”이라며 태양광 시설과 산사태의 연관성에 선을 그었다. 충북도 관계자는 “태양광 시설이 산사태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장마 같은 경우 긴 시간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림청은 2018년 4월 ‘태양광 발전소 산사태·투기 우려 심각…산림청, 대책 마련 나선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위해 나무를 벌채하면서 경관 파괴, 산사태, 토사 유출 등의 피해도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했었다.

문창열 강원대 건설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벌목을 한다는 점에서 산지 태양광이 산사태를 야기할 가능성은 있지만, 배수시설을 어떻게 갖추었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상황은 다른 것 같다”며 “보강공사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법률로 허가가 난 시설에 대해서는 행정명령이나 조례를 제정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태양광 발전시설의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시설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집중호우와 같은 기후 위기 상황을 고려해도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지 살펴보고 보완할 점이 있다면 관련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천·충주=최종권·박진호 기자, 이가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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