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중앙일보

입력

내가 어려울 때 내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길을 보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심장판막증을 이런 저런 이유로 치료하지 않고 지내온 40대 중반의 남자가 입원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심장병 때문이 아니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와 다급히 입원을 한 것입니다.

방광암으로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으려고 검사를 하였는데, 문제는 심장기능이 너무 나빠서 전신마취에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엑스레이로 보는 심장의 크기는 의사들에게 긴장을 주기에 충분한 크기입니다. 제가 수술한 환자 중에서는 어쩌면 가장 큰 심장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착잡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심장의 비대가 너무 심해지고 많이 늘어나면, 심장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어서 수술사망율이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만성병으로 인해 바짝 말라있고, 피부색도 변색되어 일견 연민을 유발할 정도입니다.

최근들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와서 병원을 찾았고, 그래서 그렇게 평생을 키워왔던 심장병을 치료하게 된 것입니다. 통상 심장 판막질환은 통증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병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여 소홀하기 쉽습니다.

정작 무서운 것은 이렇게 조용히 생명을 갉아먹는 병인데, 사람들은 통증이나 피가 보이는 질환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갖지만 그렇지 않은 심장병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전신 마취에 문제가 될 정도의 심장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방광수술만 해달라는 환자를 설득하기는 더 힘들었습니다.

“보호자는 누가 계시지요?”
“아무도 없고...누님이 한 분 계시지요.”
“부인은 어디 계시지요?”
“몸이 이런데 결혼을 했겠어요?”

거의 자조적인 답변을 하는 환자의 표정을 제대로 읽기가 어렵습니다.

재정적인 문제로 수술을 포기하고 살면서 자신의 모든 삶을 포기하다시피 살고 있는 소외된 계층이 아직도 많습니다.

겨우 누님과 매형을 모셔다 놓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그 태도가 그저 담담합니다. 보호자들의 태도에서 환자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술, 담배로 찌들어 사는 환자에 대해서 오히려 불만이 많습니다.

아프리카 난민처럼 바싹 마른 몸매에 까만 피부, 겉으로도 보일 정도의 심장박동, 술에 절어서 살았다는 가족들의 비난, 자신의 병 때문에 결혼을 꿈도 꾸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환자의 변, 주변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처지.. 이 모든 정황을 생각하면서 환자를 바라보니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일부지만,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관계가 없을 때에는 그들의 아픔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물론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이런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만, 문제는 현재의 한국에도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돈이 없으면, 새세대 심장재단에 도움을 받아서라도 얼마든지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작 문제는 이런 해결의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매스컴이 발달하고, 컴으로 인터넷을 하는 시대에 정보 부족으로 자신의 일생을 포기하고 사는 무지함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고 난 다음에 해결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자신의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행이 환자는 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방광암 수술도 끝났습니다. 너무 늦게 교정한 심장의 문제는 아마도 평생을 두고 환자의 활동을 제한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방법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자세까지도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을 시켜줄 사람이 옆에 필요하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내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길을 보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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