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배아 연구금지' 시안] 생명공학에 직격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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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배아(胚芽)연구를 사실상 금지하는 쪽으로 생명윤리법(가칭) 시안을 만든 것은 '기술 우선주의' 보다 생명의 존엄성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엄연한 생명체인 만큼 연구 목적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손상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앞선 것이다.

불임치료를 하고 남은 배아도 정부의 허락 없이는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자는 것.

현재 전국 1백20여개 병원에는 불임치료를 한 뒤 남은 냉동 배아가 수십만개 보관돼 있으며 그동안 일부 과학자들은 이를 제약없이 연구에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시안이 생명윤리를 지키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김으로써 국내 생명공학 연구는 직격탄을 맞은 꼴이 될 전망이다. 아직 최종 법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공청회 등 수정 과정이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위원회가 이 법의 골격을 만들기 때문에 최종 법안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일 이 시안대로 생명윤리법이 통과되면 그동안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성공한 체세포 복제나, 마리아산부인과의 박세필 박사가 배아를 이용해 심근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연구는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된다. 이들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의 세포로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장기를 생산할 수 있는 이들 기술은 의학계와 환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한 생명공학계 교수는 "배아 연구는 차세대 의학.생명공학에서 핵심분야인데 이를 금지하는 것은 머지않아 또 다른 기술예속을 불러올 것" 이라고 반발했다.

배아복제 허용 여부는 선진국에서도 논란 중이다.

큰 줄기를 보면 인간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허한다는 것. 올 4월 영국에 이어 미국과 캐나다도 인간복제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난치병 극복 등 연구 목적의 배아복제는 나라마다 입장이 다르다.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나라는 영국으로 올 1월 연구 목적의 배아복제 허용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복제양 돌리 등 복제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생명공학의 핵심분야인 배아복제를 주도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은 부시 대통령이 최근 폐기처분될 냉동 배아를 대상으로 한 배아복제 연구에 연방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허용키로 한 과거 클린턴 정부의 지침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 독일 등 유럽국가는 배아복제 연구를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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