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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쏠림' 선진국보다 심각…생산적 투자처 없는데 '관제펀드'타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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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잇따른 부동산 규제에도 집값이 급등하자, 정부는 세계적인 현금 유동성 과잉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과거 정부의 수요·공급 정책 실패도 한몫했다고 꼽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부동산은 2015년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었고, 세계적 유동성 과잉으로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에서도 부동산값 폭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캐나다·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유동성이 집값에 주는 영향도 크다. 그러나 나라 전체 재산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은 한국이 주요국보다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여 차례 규제를 쏟아냈지만,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했다. ‘투기 세력 탓’이란 주장은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침체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지속하고 있는 데다,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 전환에 실패한 것을 부동산 쏠림의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 부동산 쏠림, 어느 정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앙일보가 5일 한국과 미국·일본·영국·프랑스·캐나다 등 주요국 국민대차대조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자산 배율(부동산 자산/GDP)은 2017년 6.7배에서 지난해 7.4배로 급상승했다. 지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6.6배에서 6.7배로 소폭 상승에 그쳤지만, 현 정부 들어 상승 속도가 가팔라졌다. 다른 나라는 같은 기간 별다른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배율 자체도 한국이 주요국보다 월등히 높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은 4.9배, 미국은 2.4배에 그친다. 한국(7.0배)은 경제 규모보다 부동산 자산 쏠림 현상이 특히 심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대차대조표는 한 국가가 보유한 전체 재산(국부·국민순자산)을 기록한 회계장부로 국제 기준(2008 SNA)에 따라 작성하기 때문에 국가 간 현황을 비교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폭등이 원래 집값이 비싼 일부 지역에 집중하면 국가의 부동산 자산 증가 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 효율성 하락, 왜? 

생산자산대비국내총생산비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생산자산대비국내총생산비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은 그동안 운송장비·기계·지식재산생산물 등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산자산의 GDP 대비 배율도 높아지긴 했다. 2017년 3.5배에서 지난해 3.8배로 상승했다. 다른 나라는 모두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적은 생산수단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생산자산을 활용해 얼마나 많은 GDP를 달성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생산자산 대비 GDP 비율은 2016년 29.1%에서 점차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해 26.6%로 떨어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생산자산과 함께 토지·건물·금융자산 등 전체 국부를 활용해 GDP를 달성했는지를 나타내는 순자산 대비 GDP 비율을 보더라도 한국은 2017년 12.8%에서 지난해에는 11.5%로 하락했다. 1000억원어치 자본과 토지·기계를 이용해 2017년에는 128억원어치를 생산했다면, 지난해에는 이 규모가 115억원으로 감소했다는 의미다.
일본·프랑스·캐나다도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하락 폭은 한국만큼 크진 않다. 성태윤 교수는 "국내 자본과 노동이 고부가가치 산업 쪽으로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야 생산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쏠림 완화하려면? 

부동산 쏠림은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면 수익을 좇는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쏠림 심화는 다시 토지·건물 확보, 임대료 등 생산 활동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을 높여 생산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이는 해외 공장 이전과 자영업 위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하는 ‘금부분리’를 주장했지만, 하락한 산업 생산성 해결 없이는 금융과 부동산의 결합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은 수익성을 찾아가는 속성이 있고, 산업보다 부동산 투자로 얻는 수익이 더 높으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새로운 기술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부동산에 쏠린 유동성 유인책으로 '뉴딜 펀드'를 꺼냈다. 세금을 지원해 원금이 보장되는 연 3%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일종의 '관제 펀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5일 오전에는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정부와 경제·금융 단체를 불러모아 한국거래소에서 간담회까지 했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 계층의 소득 보전을 위해 세금을 쓰는 게 맞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산업 자체의 생산성 향상에 대한 고민보다 세금으로 수익성을 보전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돈은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도쿄 집값이 급등했던 일본에서도 해외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은퇴 이민 등이 늘어난 적이 있다"며 "현재 한국의 30~40대도 베트남 부동산, 해외 주식 투자까지 넘나들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한국도 해외 자산 투자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해외 투자의 효과가 국내 소비 활성화로 선순환할지, 자산의 해외 이전만 가속하는 것으로 끝날지는 결국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혁신성 여부에 달렸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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