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수돗물 바이러스 '불감증'

중앙일보

입력

"환경부가 일부 중소도시의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사실을 알게된 건 언제였습니까. " 기자가 물었다. "지난해 12월 6일입니다. " 환경부 상하수도국 관계자의 대답이다.

이어지는 질문 - .

"왜 곧바로 발표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요. "

"자료의 일관성도 부족하고 해서 추가 조사에 착수하고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

확인 결과 환경부가 경기도 하남시 신장2동의 가정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해 12월 초. 그러나 원인분석 및 시설개선 등의 조치에 나선 것은 두어달 뒤인 올 1월 30일이다.

경북 영천시 화북정수장은 그보다 일주일 뒤인 2월 7일에야 조치에 나섰다. 충남 공주시 옥룡정수장은 지난달 26일에야 조치가 시작됐다.

결국 최소한 두달 동안 하남시 주민 중 10만명과 영천시 주민 중 1천6백여명 등이 바이러스가 있는 수돗물을 그냥 마셨다는 얘기다.

이는 환경부가 수돗물 바이러스를 인지한 시점에서 역산한 결과다. 실제로 경희대 연구팀이 바이러스를 찾아낸 시점은 지난해 여름과 가을이다. 연구팀의 최종조사 결과가 환경부에 공식 보고되는데 최장 6개월 가까이 걸린 셈이다.

미국의 경우는 수돗물로 인해 사용자의 건강 피해 우려가 있을 때에는 수도사업자가 24시간 내에 공개토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미국처럼 즉각 조치를 취하진 못하더라도 환경부의 대처는 해도 너무 했다. 특히 바이러스 검출 사실을 환경부가 인지한 두어달 뒤 열린 임시국회에서 김명자(金明子)환경부장관은 "2000년 '상반기' 까지는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 고 비켜갔다.

사실 이번에 검출된 바이러스는 수돗물을 끓여 먹으면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끓여 먹으라" 고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단 말인가.

그동안 학계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없다고 고집해온 환경부의 자존심이 국민건강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국민들에게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지 않게 하려는 환경부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재발 방지에 대한 환경부의 약속과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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