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서 시신으로 발견…러시아 세자매, 친부 살해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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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에 한 여성이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세 자매들을 지지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모스크바에 한 여성이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세 자매들을 지지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러시아에서 세 자매가 학대를 일삼아온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재판은 이들의 행위를 살인으로 볼지, 정당방위로 볼지에 대한 의견으로 팽팽히 맞서며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 CNN 방송은 30일(현지시간) 2년간 이어진 세 자매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31일부터 러시아 법원이 재판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2018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한 아파트 계단에서 세 자매의 아버지인 미하일 하탸투랸이 목과 가슴 등에 30여개의 자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하탸투랸을 살해한 범인은 세 딸 크레스티나(21)와 안젤리나(20), 마리아(19)였다. 이들은 오랜 시간 부친으로부터 신체적·성적 학대를 당해오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CNN에 따르면 하탸투랸은 사망 당일 정신과에 다녀온 뒤 세 딸을 줄지어 세워놓고 얼굴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렸다. 집이 지저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때문에 천식을 앓고 있던 첫째 딸 크레스티나는 기절했다.

세 자매의 변호인단은 하탸투랸의 학대가 지속돼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하탸투랸은 지난 2018년 4월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의심하며 세 자매에게 "너희들은 XX(성매매 여성을 칭하는 비속어)이고 XX처럼 죽게 될 것"이라며 위협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또 "하탸투랸이 자녀들을 절망으로 내몰았고 이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면서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부친을 살해하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는 세 자매를 옹호하는 운동도 일어났다. 인권운동가들은 지난해 여름 "죽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집회를 하며 세 자매의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러시아 여성의 47%, 남성의 33%가 “세 자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느꼈다”고 답했다고 CNN은 전했다.

첫째인 크레스티나와 둘째 안젤리나의 심리는 31일 모스크바 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막내 마리아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이유로 별도의 재판을 받게 된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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