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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위기에 임하는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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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문재인 정부 23번째 부동산 대책이 곧 나온다. 지난 28일 정부와 여당 발표대로라면 다음 달 4일 그간 말 많고 탈 많았던 주택 공급 대책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장의 기대는 물론 크지 않다.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관계 부처·기관이 원팀(One team)이 돼 7월 말까지 최대한 조속히 마련하겠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에 한 말은 열흘이 지나기도 전 공수표가 됐다. 원팀이란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여당에서 중구난방 대책 얘기가 흘러나온다. 부총리가 공언한 이달 말 시한도 결국 넘겼다.

부동산 위기의 시대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76%(2019년 국민대차대조표)에 이르는 현실에서 부동산 위기는 곧 집권당과 정부의 위기다.

티머시 쿰스 미국 텍사스 A&M대 교수는 세계적인 위기 대응 전문가다. 전 세계 산업계를 들썩이게 한 19가지 사례를 들어 해법을 제시한 『위기관리 DNA』란 책을 썼다. 쿰스 교수는 위기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형 파악이라고 했다. 어떤 종류의 위기이냐에 따라 해법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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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위기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눴다. ‘①외부로부터의 공격’이라면 피해자란 점을 부각해야 한다. 조직(기업이나 정부)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 내 편을 늘리는 평판 조성이 우선이다. ‘②의도치 않은 사고 발생’이라면 조직 자체의 잘못·위기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며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최악이라 할 수 있는 ‘③내부 임직원에 의한 잘못’이다. 극복 방법은 간단하다. 신속한 책임 인정과 사과다. 유일한 해법이기도 하다.

현 정부는 부동산 위기의 원인을 소수 부자, 투기 세력의 공격(①), 과잉 유동성과 전 정부의 실책(②) 정도로만 보는 듯하다. 부자·투기 세력에 대한 살벌한 경고를 반복하고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현 부동산 위기의 유형은 ②와 문재인 부동산팀의 실책(③) 사이쯤이다. 헛다리 대책만 반복하며 여론과 부동산값만 들끓게 해 시간이 갈수록 ③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신속한 사과와 책임 인정(문책)만이 살길이지만 현 정부 내 그런 기류는 여전히 없다.

현명한 쿰스 교수는 이런 상황도 예견했다. 위기관리 대응에 대한 조직원의 반응은 ‘거부→분노→타협→수용’ 4단계로 진행된다고 했다. 거부와 분노에 머물러 있는 현 정부 부동산팀의 태도가 빨리 타협과 수용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곧 나올 23번째 대책이 23번째 분노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