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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혐의 탈북어민 북송한 정부, 성폭행혐의 월북자엔 “송환요구 검토 안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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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한기 합참의장(가운데)이 28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탈북민 월북에 대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 오종택 기자

박한기 합참의장(가운데)이 28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탈북민 월북에 대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 오종택 기자

2017년 탈북했다 지난 19일 월북한 김모(24)씨가 국내에서 성폭행 혐의로 조사받는 피의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의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12일 자신의 집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탈북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난 4일 경찰은 피해자 몸에서 나온 DNA가 김씨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김씨가 월북을 결심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한국선 살인 처벌 가능성 낮아” #당시 통일장관 북송 근거로 들어 #국내서 벌어진 범죄엔 다른 잣대

경찰은 김씨가 사라진 뒤에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신병 확보를 위한 수사에 나섰다. 20일에 김씨를 출국금지했고, 21일에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인영장을 발부받았다. 기술적으로 김씨의 신병을 확보할 법적 요건은 일단 충족된 셈이다.

이와 관련, 탈북 국군포로들의 대북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던 엄태섭 변호사는 “혐의가 입증된다면 법원의 영장 발부를 근거로 피의자 신병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적극 나서 송환 요구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일단 김씨 송환을 요구할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휴전선을 넘어간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며 “송환을 요구할 마땅한 남북 간 합의의 근거도 없고,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돼 있어 아직 송환 요구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9년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도피 중인 탈북민 2명이 승선했던 목선으로 군 당국이 동해상에서 나포했다. [연합뉴스]

2019년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도피 중인 탈북민 2명이 승선했던 목선으로 군 당국이 동해상에서 나포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지난해 탈북 어민을 강제로 북한으로 보냈을 때와는 기준이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동해 상으로 넘어온 북한 어민 2명을 정부는 닷새 만에 강제 북송했다.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이들이 (한국에서) 재판을 통해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조사와 재판은 사건이 일어난 북한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정부의 이런 논리대로라면 김씨도 한국에 데려와 재판하고 법적 책임을 한국 사법 체계 내에서 묻는 게 맞다.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한 데다 피해자가 한국인이고, 수사를 통해 혐의점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도 한국 경찰이기 때문이다.

◆북한 발표 전까지 몰랐다=군 수뇌부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월북 사실을 북한 발표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6일 오전 7시~7시 30분쯤 북한의 보도를 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화를 해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박한기 합참의장도 오전 7시 뉴스에서 북한 보도를 전해 듣고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정용수·이근평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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