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만원 GD 신발이 1300만원…‘세상에 단 하나’ 61배 웃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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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10면

커지는 2030 한정판 리셀 시장

“에어디올 하이(high) 285사이즈 3000만원 팝니다. 매장 앞에서 바로 거래 가능합니다.”

시세차익 노리는 재테크로 쏠쏠 #샤넬·롤렉스·운동화 등 품목 다양 #‘나만 소유’ 인증하려 지갑 열어 #디자인·유명인과 협업도 중요 #올 세계 시장규모 48조원 달해 #시장 교란, 탈세 곱잖은 시선도

최근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나이키와 명품 브랜드 디올이 협업해 출시한 ‘에어디올’ 운동화를 구매하자마자 매장 앞에서 리셀(resell·재판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운동화의 출고가는 300만원. 중형차 한 대 값까지 훌쩍 뛰어 재판매되고 있지만 운동화 마니아 사이에선 이마저도 없어서 구하지 못하고 있다. 중고장터에서 운동화 리셀을 자주 한다는 백도경(22)씨는 “에어디올 구매금 마련을 위해 소장 운동화 22켤레를 웃돈 붙여 리셀하고 있다”며 “가격은 매우 비싸지만 소장가치가 충분해 꼭 구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30세대 중심으로 리셀 시장이 하나의 재테크로 주목받고 있다. 본래 리셀은 ‘새 제품에 가까운 물건을 제값보다 값싸게 판매하는 중고거래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정판 제품에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생활 속 재테크로 받아들여진다. 리셀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롤렉스+제테크)라는 고전적인 일부 고가 명품 위주에서 스니커테크(운동화), 레테크(레고), 스벅테크(스타벅스MD) 등 전반적인 생활용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해 출시한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일명 ‘지디 운동화’라 불리는 이 제품의 리셀가는 최대 1300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지난해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해 출시한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일명 ‘지디 운동화’라 불리는 이 제품의 리셀가는 최대 1300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사진 나이키코리아]

#리셀의 선두에는 운동화가 있다. 연예인 프리미엄까지 붙으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지드래곤 운동화’로 알려진 나이키의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제품 권장소비자가는 약 21만원이지만 리셀가는 최대 1300만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미국 중고의류 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올해 세계 리셀 시장 규모는 390억 달러(약 48조원)다. 이 가운데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지난해 20억 달러(2조4500억원)에 달했고, 2025년까지는 60억 달러(7조37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다.

가수 지드래곤.

가수 지드래곤.

리셀 시장은 코로나19 위기도 비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제품 생산이 일시 중단되자 한정판도 아닌 제품들이 리셀러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게임회사 닌텐도는 신작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과 콘솔 기기 ‘닌텐도 스위치’를 출시했다. 하지만 중국·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생산 공장이 코로나19로 가동을 멈춘 탓에 일시적인 품귀 현상을 보였다. 출고가 36만원인 이 제품은 중고장터에서 최대 100만원 가까이에 거래되기도 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주부 정현경(29)씨는 “딸을 위해 아침부터 대형마트에서 줄 서 힘들게 게임기를 구매했지만 중고거래에서 비싸게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15만원 더 붙여서 처음으로 리셀 거래했다”며 “아침 일찍 선착순 줄을 선 수고비 차원에서 하루 외식비를 벌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수 지코가 신은 운동화 ‘에어디올’은 중고장터에서 수천만원에 재거래되고 있다. [사진 중고장터 갈무리]

가수 지코가 신은 운동화 ‘에어디올’은 중고장터에서 수천만원에 재거래되고 있다. [사진 중고장터 갈무리]

갈수록 리셀 시장이 커지는 이유에는 희귀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핵심 수요층인 2030대는 남들이 갖지 못한 제품을 나만 소유했다는 인증을 위해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한다. 진입장벽도 낮다. 수익을 내는 다른 재태크 수단보다 전문지식과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 희소성 높은 제품만 손에 넣어 재판매를 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당장의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 간단한 거래 방식도 장점이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제품 사진과 가격을 제시하면 메시지나 댓글을 통해 거래를 진행한다. 직접 만나 거래하거나 택배를 통해 물건을 주고받는다.

가수 지코. [사진 지코 인스타그램]

가수 지코. [사진 지코 인스타그램]

14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스니커즈 전문 유튜버 와디는 “한정판을 수집했다가 웃돈을 붙여 다시 파는 행위는 밀레니얼 세대만의 소비문화”라며 “지금까지 미술품, 명품과 같은 고가 제품만을 재산의 일부로 취급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에겐 한정판 제품이 그들만의 재산으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레고 유튜버 ‘서연아범’이 수년간 수집한 레고 시리즈들. 전민규 기자

레고 유튜버 ‘서연아범’이 수년간 수집한 레고 시리즈들. 전민규 기자

하지만 한정판이라고 해서 무조건 리셀 시장에서 비싼 값을 보장받지는 않는다.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제품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명 브랜드나 유명 인사와 협업 작품 여부에 따라서도 리셀가가 결정된다. 소비자의 어린 시절 추억을 환기하는 등 제품의 히스토리와 상징성도 핵심 역할을 한다. 레고 장식업체 ‘마이뮤지엄’을 운영하면서 레고 수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튜버 서연아범은 “이 3박자가 다 고루 갖춰도 리셀가가 뛰지 않아 되팔 때 손해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리셀 시장은 주식과 비슷해 미래 가격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명품 브랜드 샤넬의 가격 인상이 알려지자 제품 구매를 위해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서 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명품 브랜드 샤넬의 가격 인상이 알려지자 제품 구매를 위해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서 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리셀 시장이 확대되면서 기업들도 리셀 대열에 뛰어들었다. 소비자끼리 형성해온 리셀 거래 시장에 기업체도 판로 개척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는 한정판 운동화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을 출범했다. 전문 검수팀이 정품 인증에 나서고 실시간으로 시세 그래프를 공개한다. 중개 수수료와 택배 배송 거래비를 무료로 서비스하면서 리셀러 확보에 나섰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의 관계사인 서울옥션블루도 신발, 의류 한정판 경매 사이트 ‘엑스엑스블루(xxblue)’와 오프라인 매장 ‘스니커즈 드롭 존(Drop Zone)’을 문 열었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콘텐트를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에 발맞춰 스니커즈 리셀 전용 매장까지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셀러에 대한 곱지 않은 일부 시선도 있다. 탈세 우려가 가장 크다.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6개월 동안 거래 횟수가 20회 이상이면서 거래 규모가 1200만원 이상인 경우 판매자는 사업소득세 및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한다. 하지만 SNS나 비공개 블로그 통해 이뤄지는 개인 간 거래는 이 같은 규정의 사각지대다.

서울지방국세청 관계자는 “자체적 모니터링을 통해 위법성을 보이는 판매자에겐 안내 문자를 통해 시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는 탓에 모든 중고장터를 살펴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추첨제 ‘라플’ 깜짝 시판 ‘드롭’…한정판 판매의 진화

패션·유통업계는 아예 리셀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면서 관련 용어도 다양해지고 있다. 추첨을 통해 제품 구매를 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라플(raffle)이 대표적이다. 특정인이 아르바이트 고용을 통해 선착순 판매 제품을 싹쓸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된 방식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피해지면서 라플 판매를 택하는 업체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복권 당첨처럼 선택받은 자만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라플 제품은 리셀 커뮤니티에서 인기거래 상위권에 속하게 된다.

예고 없이 일부 소량 제품만 갑작스레 선착순 판매하는 드롭(drop)도 있다. 신제품을 떨군다는 뜻으로, 해당 업체가 온라인 공지사항을 통해 ‘깜작 판매’ 소식을 전해 제품을 선보인다. 언제, 얼마만큼 제품이 풀릴지 모르기 때문에 발 빠른 정보력과 행동력이 관건이다. 주요 인기 오프라인 매장 인근에는 드롭을 노리고 상시 대기하는 일부 마니아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론 빠르게 선착순 줄을 서더라도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드코’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레스 코드의 줄임말로 패션업체는 오프라인에서 한정판 제품을 판매 시 구매자들에게 의복 규정을 요구할 때가 있다. 특정 컬러와 제품을 입고 매장에 입장한 사람만이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드코는 마니아 팬덤을 결집하기 위해 주로 의류 브랜드 회사에서 사용하는 마케팅 방법의 하나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련의 한정판 판매방식은 철저히 소셜미디어(SNS)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매장 앞에서 텐트 치고 밤새웠던 과거 선착순 판매에서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라며 “충성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는 동시에 제품이 유행한다는 정보가 판매를 더 자극하는 편승효과(밴드웨건 효과)까지 강화해 업체에겐 최적의 마케팅 방법이 된다”이라고 설명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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