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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막염 딸도 못 돌봤다" 코로나 하늘길 막은 그들의 반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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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코로나 국내 첫 발생 반년 

코로나19 공항 방역의 주역인 인천공항검역소 김진숙 검역2과장(오른쪽)이 입국자 발열 체크 과정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검역소]

코로나19 공항 방역의 주역인 인천공항검역소 김진숙 검역2과장(오른쪽)이 입국자 발열 체크 과정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공항검역소]

“지난 4월 막내딸(17)이 뇌수막염에 걸려 입원했는데 혹시나 해서 병원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병원 밖에서 아이 얼굴만 잠깐 보고 왔습니다.”

인천공항검역소 주역 4인 #“뇌수막염 딸도 돌보지 못해 #사명감 아니면 못 버텼을 것” #2만5000건 검사, 700명 확진 #2017년부터 근무 김진숙 2과장 #“한창 바쁠 땐 보름간 집에 못 가” #1번 환자 발견한 김한숙 1과장 #“중증환자, 병원 배정 쉽지 않아” #공무원 2년차 최지혜 검역관 #“오후4시 출근 12시간만에 화장실” #역학조사·검체채취 김정길 중령 #“내 코에 면봉 수십번 찔러 실습”

김진숙(54)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검역2과장은 당시 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딸은 자녀 셋 중 막내다. 누구보다 어여쁜 아이인데 힘들 때 곁에 가지 못했다. 유럽·미국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쏟아져 들어올 때라 혹시라도 본인에게 바이러스가 있을지 몰라서다. 김 과장은 서울대 약대를 나와 2006년 보건복지부 보건직 공무원(5급 특채)이 됐고, 2017년 인천공항에 배치됐다. 현재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검역을 총괄한다.

김 과장은 “남편이 대신 딸을 돌봤다”며 “퇴근하면서 잠깐 들러 병원 주차장에서 마스크를 쓴 채 딸 얼굴만 보고 왔다. 그래도 딸이 서운해하지 않고 이해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한숙 검역1과장, 김정길 국군양주병원 진료부장, 최지혜 검역관. [사진 인천공항검역소]

왼쪽부터 김한숙 검역1과장, 김정길 국군양주병원 진료부장, 최지혜 검역관. [사진 인천공항검역소]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국내 첫 환자가 나온 지 6개월이 흘렀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껏 7개월가량 쉼 없이 코로나19와 싸운 곳이 인천공항이다. 하늘길로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싸워 온 주역 4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김진숙 과장은 “지난 7개월이 모두 똑같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비행기가 들어와 주말 할 것 없이 24시간 대기 상태로 지냈다. 그는 “새로운 지침이 떨어지면 늘 자정부터 적용됐고, 문제가 없도록 준비하려면 집에 갈 틈이 없었다”며 “한창땐 보름간 집에 못 가고 공항에서 먹고 잤다”고 했다.

내과 전문의인 김한숙(47) 검역1과장은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검역 전반을 책임진다. 보건복지부에서 10년 넘게 근무했고, 지난해 8월 공항에 배치됐다.

“딸 생일날 감염될까 우려 집 앞에 선물만 두고 왔다”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자들이 자가격리 수칙을 안내받고 있다. 해외 입국자는 2주간 시설 또는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뉴스1]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자들이 자가격리 수칙을 안내받고 있다. 해외 입국자는 2주간 시설 또는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뉴스1]

김한숙 과장은 “코로나19가 공항 검역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1월 20일~이달 18일 373만5000명(환승객 포함)이 인천공항을 찾았다. 검역관은 111명(이달 30명 충원). 대략 검역관 한 명이 3만 명 넘게 커버했다. 김 과장은 “인천공항에서 2만5000건 검사했고 700명 넘게 확진자를 찾아냈다”며 “공항에서 의심 환자를 골라내고 음성이 나와야 지역사회로 보내는 시스템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작은 병원을 만든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25개국 대사가 공항 견학을 왔다. ‘K방역’의 핵심인 ‘K검역’을 수출했다.

김한숙 과장은 1번 확진자를 잡아낸 인물이다. 지난 1월 19일 중국인 30대 여성이 입국했을 당시 검역관의 보고를 받고 병원 이송을 결정한 게 김 과장이다. 그러나 김 과장은 손사래를 친다. 그는 “검역은 팀 플레이”라며 “검역 1선에서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건강상태 질문서를 받아 증상을 확인한다. 증상이 있으면 검역 2선으로 넘겨 역학조사관이 자세히 살펴본다. 어느 한 군데라도 놓친다면 환자 판별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한숙 과장은 “검역소는 의료기관이 아니어서 의료적 처치를 할 수 없다”며 “중증 환자는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병상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자체 병상배정팀이나 보건소에 협조를 구하지만 “병실이 없다” “우리 지역 주민이 아니다”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공무원 2년 차인 2터미널의 현장 막내 최지혜(24) 검역관도 많은 애로를 겪었다. 지자체가 외국인 환자를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최 검역관은 “다시 생각해 달라고 애걸해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김한숙 과장은 "공항 검역의 기능이 어디까지인지 따져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숙 인천공항검역소 검역2과장(오른쪽 위)이 제2여객터미널의 검역을 담당하는 검역관들과 회의하고 있다. [사진 인천공항검역소]

김진숙 인천공항검역소 검역2과장(오른쪽 위)이 제2여객터미널의 검역을 담당하는 검역관들과 회의하고 있다. [사진 인천공항검역소]

민원도 폭주했다. 유학생이 귀국할 때 증상이 있어 검사해야 하는데도 "문제 없을 거다. 내보내 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검역관은 네 팀으로 나눠 교대로 근무한다. 터미널당 일할 사람은 16명에 불과하다. 최 검역관은 "보통 100~150명 정도 검역하는데 30분~1시간이 걸린다. 미국·유럽 입국자가 많을 땐 의심환자도 그만큼 많아 시간이 3배 더 소요됐다”며 "오후 4시에 출근해 다음 날까지 12시간 꼬박 근무하고 처음 화장실 간 적도 있다”고 했다. 김한숙 과장은 "사명감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1인 5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의관과 간호장교도 공항 검역을 책임지는 인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월 말부터 군의관과 간호장교 126명이 검역을 지원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김정길(39·중령) 국군양주병원 진료부장도 지난 2월 말부터 6월 초까지 공항에 파견돼 역학조사와 검체 채취를 담당했다. 김 중령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실습 때 코에다 면봉을 수십 번 찔러넣었다”며 "군의관들 실습을 위해 내 코를 빌려준 경우도 수십 번 된다”고 했다.

감염에 대한 염려는 없을까. 김진숙 과장은 초창기에 의심 환자를 접했다가 그 환자가 확진되면서 밀접 접촉자로 공항에 격리된 적이 있다. 두려움보다 빈자리에 대한 걱정이 컸다. 김 과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전했다. 최 검역관은 "‘코로나19에 걸릴지도 모르는 검역관이 돌아다닌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6개월 동안 가족을 딱 한 번 만났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지난 3월 딸(8) 생일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선물을 새벽 2시 집 현관 앞에 놓고 왔다. 포장 박스를 손소독제로 정성껏 닦았다. 그는 "아내에게 문자로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으니 포장지를 닦고 전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2월~6월 초 100일 넘게 집에 가지 못하고 공항 근처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는 "몸은 피곤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에서 항상 마음은 포근하다”고 말한다.

해외 유입 확진자의 양상이 달라져 공항 검역 전략도 수시로 바뀐다. 유럽·미국발 입국자가 많던 3~4월에만 해도 현지 상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유증상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됐다. 증상이 전형적이라면 어김없이 확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5월 이후 역학적 연관성이 중요해졌다. 김한숙 과장은 "출발지역의 환자 발생통계를 보면 정작 특이사항이 없는데 입국자 가운데 확진자가 많더라”며 "얘기를 들어보면 확진자들이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등 역학적 공통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최근엔 고위험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새 검역관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검역 전문가로 변신하고 있다.

김상희 인천공항검역소장(국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지역사회로 가지 않게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물 샐 틈 없이 공항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김 소장도 두 아이(12,18세)의 엄마다. 새벽에 밥을 차려놓고 출근하면 아이들이 알아서 챙겨먹는다. 온라인 수업도 마찬가지다. 김 소장은 "엄마 상황이 바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황수연·이태윤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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