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음주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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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 민족에게는 그들 나름의 음주습관이 있다. 따지고 보면 중국인들도 술을 꽤나 즐긴다.

중국 사회에서 '주선(酒仙)' '우음(牛飮)' '해량(海量)' 등의 단어가 자주 쓰이는 것을 봐도 중국인이 술을 퍽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국인의 습관과 대조적

그러나 한국에 와서 체류하는 동안 관찰한 것을 종합해보면 한국인이 이 부분에서는 중국인보다 분명히 한 수 위다.

밤중에 서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이 술을 마신 채 이쪽저쪽에 쓰러져 잠들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좀체 눈에 띄지 않는 한국만의 거리모습이 아닌가 싶다.

술을 마시는 방식에서 양국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은 보통 술과 요리.밥을 상에 함께 올린다.

술을 마시면서 배를 함께 채우고 술로 기분이 어느 정도 들떠 있을 때가 되면 배도 웬만큼 채워진다.

아직 배가 부르지 않다고 판단되면 식당 주인에게 탕면 혹은 물만두 등을 시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따라서 술과 밥을 배불리 마시고 먹는 데 드는 시간은 길어야 두시간 남짓. 이런 습관 때문에 대취할 기회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의 음주 습관은 이와 다르다. 1차에 이어 2차, 3차로 술집을 바꿔가며 이어지는 술자리가 보통이다.

소주로 시작한 술자리는 맥주와 양주판, 심지어 가라오케 주점으로까지 계속된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적인 특징으로 비춰지는 것은 낮술을 마시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는 점이다.

또 간혹 길거리에 쓰러져 잠이 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다음날 정상적으로 출근하거나 등교를 해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한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 관찰한 사실인데, 한국 대학생들은 대학생활을 보통 술로 시작하는 것 같다.

대학시험을 앞두고 마시는 '백일주' 에서 시작해 입학하자마자 '동문(同門)주' '동향(同鄕)주' 등을 마시면서 주위 사람들과 교제를 한다.

중국의 대학생들이 기껏해야 자신의 생일 에 친구들을 불러 음식과 함께 간단한 술을 나눠 마시는 경우와 크게 대조된다.

술이 이들 대학생의 '평생친구' 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술에 관한 문화는 어쨌든 한국 사회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술은 적게 마시면 매우 유용한 액체다. 몸 속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사회적인 교제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하루일과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음날의 건전한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술에는 명확한 적량(適量)이 없다. "술자리에서 지기를 만나면 천 잔의 술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 라는 옛말도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술이 병이 되고 독이 된다는 점을 아울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말의 서울 밤거리에서는 술을 마신 뒤 내지르는 신음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런 소리는 한밤중에도 들린다.

아마 한국에서 매우 일반적인 소주(燒酒)가 사람들의 가슴 속까지 태워(燒)버리는 모양이다.

다음날이 되면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사념에 빠져 있는 듯한 사람들을 자주 대한다. 지난 밤 술자리의 주독을 채 풀지 못한 사람들이다.

*** 병 되고 독이 되면 고쳐야

월요일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 일부는 마치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강의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한 자세다. 선생이 무엇인가 물어도 엉뚱한 대답이다. 이 모두 지나친 음주문화로 생겨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일요일과 월요일 아침에 거리를 걷다가 보게 되는 술자리의 흔적들이다. 이곳저곳에 토악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서울만이 연출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현대화하고 겉으로 보기에 근사한 서울의 거리에 남겨지는 어두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친 음주문화가 남겨 놓는 이같은 현상들은 나름대로 성실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사각(死角)' 이다.

부정적 면이 많은 문명의 사각이라면 마땅히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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