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안전한 쇠고기' 주겠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독일 정부가 20만마리분의 쇠고기를 지원해 달라는 북한측 요청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광우병 감염 우려로 자신들은 못 먹는 쇠고기를 북한에 주는 야만적인 행위를 중단하라는 것이 반대의 요지다.

그렇다면 북한의 입장은 뭔지를 알아보려고 19일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고위관리와 통화했다.

- 독일측에 쇠고기 지원을 정식 요청했습니까.
"우리가 요청한 게 아니고 독일 구조의사회가 우리 큰물(홍수) 피해 대책위원회에 이 문제를 제기해 그렇게 하라고 한거지요. "

- 광우병이 난리인데 문제가 없을까요.
"유럽연합(EU) 의 규정에 따라 검역을 마친 1백% 안전한 쇠고기를 지원받겠다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소. "

- 혹시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지원받겠다는 입장은 아닙니까.
"거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시오. 그런 쇠고기는 우리가 반대할 뿐만 아니라, 독일의 법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오. "

- 20일 독일측과 이 문제를 협상하기로 돼 있는데 잘 될 것 같습니까.
"독일측에 달린 문제지요. 우리가 애걸복걸할 입장은 아닙니다. "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진 북한 이익대표부는 기자의 질문에 비교적 상세하게 자기네 입장을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에 대한 독일의 쇠고기 지원에 반대하는 한국 내의 여론은 조금 과장된 듯 하다.

독일이 지원을 고려하는 쇠고기는 북한 관리의 말대로 검사를 거친 안전한 쇠고기다. 애초에 소 40만마리를 도살, 폐기하는 대신 이를 제3세계에 지원하자는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이 점은 분명한 전제조건이었다.

광우병 감염 우려가 있는 쇠고기를 검사도 거치지 않고 외국에 지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독일이 그런 엉터리 국가는 아니다.

문제는 "북한이 '광우병 파동에도 불구하고' 독일 쇠고기를 지원 받겠다" 는 독일방송의 표현을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라도 받겠다" 는 뜻으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북한이 어려워도 상식적으로 광우병 쇠고기를 요청했을 리는 만무하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할 때 무턱대고 반대만 하는 게 과연 옳은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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