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갈지자' 대응에 금융시장 혼란···중국 기업은 짐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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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예상도 가늠도 할 수 없다. 칼을 빼 들 듯하다가 제자리로 돌려놓고, 이내 다른 쪽을 겨냥해 화살을 쏠 시늉을 한다. 중국 때리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갈지자 행보’가 딱 이런 모양새다. 그 유탄을 맞는 곳은 금융 시장과 기업이다.

홍콩 페그제에 공격은 철회 #미·중 회계협정 폐기 만지작 #미 상장 중국기업 전전긍긍

대표적인 것이 홍콩 달러 페그제 약화 방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14일 트럼프 정부가 홍콩계 은행에 대한 달러 매입 제한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달러 매입 제한 조치는 금융허브인 홍콩의 지위를 흔들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홍콩달러 환율을 미국 달러에 고정한 환율제(페그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달러는 미국 달러당 7.75~7.85 홍콩 달러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미국 달러화에 묶인 홍콩 달러 값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려면 달러 수급이 원활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1992년 미국이 제정한 홍콩정책법이다. 그 덕에 홍콩달러를 찍어내는 시중은행 3곳(HSBCㆍ스탠다드차타드ㆍ중국은행)은 자유롭게 달러를 매입할 수 있었다. 이들 발권은행은 외환감독당국인 홍콩 금융관리국(HKMA)에 달러를 지급하고 그에 상응하는 홍콩달러를 찍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만지작거렸던 달러 매입 제한 조치는 이 통로를 막는 것이다. 발권 은행들이 미국 달러를 사들이지 못하면 페그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환율의 안정성이 사라지면 홍콩의 금융허브 지위는 위태로워진다. 금융시장의 혼란도 피할 수 없다. 페그제가 무너지면 각국 은행이 홍콩달러를 시장에 쏟아낼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 전체에 충격파가 번지게 된다.

SCMP는 미국 정부 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달러 매입 제한 조치가 실제로 실행하기 어려운 데다 결국 미국도 타격을 입게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보도했다. 홍콩달러에 대한 공격이 미국 기업과 금융 회사 등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반대 의견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지난달 11일 홍콩거래소 외부 대형 전광판에 올라온 중국의 인터넷 포털 넷이즈(網易)의 홍콩 상장을 축하하는 문구.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달 11일 홍콩거래소 외부 대형 전광판에 올라온 중국의 인터넷 포털 넷이즈(網易)의 홍콩 상장을 축하하는 문구. 신화통신=연합뉴스

홍콩달러를 포기한 트럼프의 새로운 제물은 미국 자본시장 진출을 노리는 중국 기업이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간) 미국 행정부가 2013년 체결한 미ㆍ중 회계협정을 파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키이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로이터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중 회계협정은) 미국의 주주를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 기업을 불리하게 만드는 국가 안보 문제”라고 밝혔다.

이 협정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미국 회계규정 준수 의무는 면제된다. 미 증시 상장 등에 나선 중국 기업이 미국식이 아닌 중국식 회계 규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회계협정이 파기돼 중국 기업에 미국식 회계 규정이 적용되면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 상장은 어려워지게 된다.

방향타를 잃은 듯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정부의 공격에 헷갈리고 멍드는 곳은 시장이다. CNBC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지난달 5일 이후 치솟는 홍콩달러 가치 속 고정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HKMA는 최소한 23번의 시장개입을 했다고 보도했다.

회계 감사 강화 등을 앞세운 미국의 중국 기업 쳐내기에 짐을 싸는 중국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상원을 통과한 외국기업책임법 때문이다. 이 법에 미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이 미국 상장회사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회계감사를 3년 연속 통과하지 못하면 거래가 금지된다. 또한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회사의 경우 반드시 외국 정부의 소유인지, 외국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미국 증시를 떠나는 중국 기업은 홍콩 증시로의 이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규모가 작은 중국 기업의 경우 (미국 증시를 떠나면) 비상장기업으로 전환하거나 사모펀드 등에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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