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파스타 먹었어요" 평범한 이말, 틱톡선 슬픈 암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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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파스타를 먹었어요."
"기다려, 너 모든 종류의 아이스크림 맛은 봤니?" 

평범한 일상의 대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약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동영상 공유 소셜미디어(SNS) 틱톡에 이런 대화가 떴다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말리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다.

'극단선택' 충동 암시 '암호'로 쓰여 #삶의 희망 전하는 댓글로 죽음 말려 #美·英·韓 청소년 자살률 해마다 증가 #印 16세 틱톡 스타 극단 선택하기도

'파스타를 먹었다' '샴푸와 헤어 컨디셔너를 끝마쳤다'는 문구가 틱톡에선 청소년들이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쓰이고 있다. [틱톡 캡처]

'파스타를 먹었다' '샴푸와 헤어 컨디셔너를 끝마쳤다'는 문구가 틱톡에선 청소년들이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쓰이고 있다. [틱톡 캡처]

틱톡에서 "파스타를 먹었다"는 문구가 청소년들이 우울과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일종의 '암호'로 사용되고 있다고 1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미러, 더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샴푸와 헤어 컨디셔너를 끝냈다(머리를 감았다)"는 말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같은 표현은 한나 데인스의 시 'Don't kill yourself today(오늘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마)'에서 나왔다는 게 외신의 추측이다. 이 시는 '넷플릭스 시청 기한이 일주일 남았으니 오늘은 죽지마' '스타벅스가 다음 달에 새로운 프라푸치노를 출시할테니 오늘은 죽지마' 등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열거하면서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니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누군가에게 네 최고의 파스타 레시피를 알려주기 전까진 죽지마' '샴푸와 컨디셔너를 끝마치기 전까진 죽지마' 등의 문구가 나오는데, 청소년들이 바로 이 문구를 차용해 "오늘 파스타를 먹고, 샴푸와 컨디셔너를 끝냈으니 목숨을 끊겠다"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스타를 먹었다'는 문구로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틱톡 게시물. [틱톡 캡처]

'파스타를 먹었다'는 문구로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틱톡 게시물. [틱톡 캡처]

 '샴푸와 컨디셔너가 거의 다 비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레시피를 말하고 싶다'는 문구로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틱톡 게시물. [틱톡 캡처]

'샴푸와 컨디셔너가 거의 다 비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레시피를 말하고 싶다'는 문구로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암시하는 틱톡 게시물. [틱톡 캡처]

이런 게시물의 의미를 알아차린 다른 틱톡 이용자들은 살아야 할 이유를 댓글로 전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레시피를 엄마에게 알려줬고, 오늘 저녁 식사로 만들었다"는 메시지가 담긴 한 청소년의 틱톡 영상은 조회수 300만 건을 넘었고, 댓글은 6만개 이상 달렸다.

이를 본 틱톡커들은 "기다려. 너 모든 종류의 아이스크림 맛은 봤니?" "하늘에 뜬 모든 별 개수는 세어봤고? 네 소울메이트는 찾았니? 네 웨딩 케이크는 어쩌고?"와 같은 댓글로 삶의 희망을 전하며 극단 선택을 만류하고 있다.

한 청소년이 틱톡에 '파스타를 먹었다'는 문구로 극단 선택을 암시하자 이를 만류하기 위해 삶의 희망을 전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틱톡 캡처]

한 청소년이 틱톡에 '파스타를 먹었다'는 문구로 극단 선택을 암시하자 이를 만류하기 위해 삶의 희망을 전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틱톡 캡처]

외신은 이처럼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파스타나 샴푸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말려달라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도에선 230만 팔로워를 보유한 16세 틱톡 스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충격을 안겨줬다.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 인디안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춤 동영상으로 틱톡에서 인기를 얻은 인도 소녀 시야 카카르는 지난달 25일 뉴델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도 경찰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봉쇄령이 내려지자 몇 주 동안 집에만 머물던 소녀는 숨지기 며칠 전부터 우울감을 호소했다. 카카르는 사망하기 몇 시간 전까지도 틱톡에 동영상을 올렸다고 외신은 전했다.

230만 팔로워를 보유한 16세 틱톡 스타 시야 카카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틱톡에 마지막으로 올린 동영상. [틱톡 캡처]

230만 팔로워를 보유한 16세 틱톡 스타 시야 카카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틱톡에 마지막으로 올린 동영상. [틱톡 캡처]

청소년의 극단 선택은 국내외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07년에서 2017년 사이 10~24세의 자살률은 56% 증가했다. 2007년에서 2013년 사이 매년 평균 3%씩 증가했으나 2013년에서 2017년 사이엔 매년 7%정도 늘었다.

영국에선 전체 자살률은 감소하는 반면 25세 미만의 자살률은 증가하고 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특히 10~24세 여성의 극단 선택이 늘어 1만명당 3.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인도의 16세 틱톡 스타 시야 카카르가 생전 환하게 웃고 있다. [틱톡 캡처]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인도의 16세 틱톡 스타 시야 카카르가 생전 환하게 웃고 있다. [틱톡 캡처]

한국 청소년의 극단 선택도 해마다 늘어 2018년 기준 10~24세 자살률은 10만명당 8.2명을 기록했다. OECD 회원국(평균 5.9명) 중 10번째로 많은 수치다.

영국의 한 청소년 단체 측은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이 극단 선택에 대한 충동을 느끼는 원인으로는 학대나 학교폭력, 가족의 죽음, 학업에 대한 압박감, 외모에 대한 걱정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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