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당한 고객에 금융회사가 배상한다…정부, 법 개정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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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금융회사에 보이스피싱 배상책임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금융회사의 보이스피싱 예방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과기정통부 등 관련부터는 24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올 1~4월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1220억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2177억원)보다 43% 감소했다. 하지만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하고 있어,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보이스피싱 그래픽.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그래픽. 중앙포토

“금융회사가 책임 다해야”

가장 눈에 띄는 방안은 금융회사에 원칙적으로 보이스피싱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운다는 계획이다. 거래 고객이 고의·중과실 없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면 금융회사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로 했다. 예컨대 은행 직원이 ‘보이스피싱이니까 송금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렸는데도 고객이 돈을 보낸다면 은행에 책임이 없지만, 그 정도로 고객의 과실이 크지 않다면 금융회사에 배상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금융거래 시 본인확인을 하지 않았거나, 정당한 피해구제 신청이 있었는데도 지급정지를 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금융회사가 배상 책임을 졌다. 사실상 금융회사에 배상 책임을 물을 일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권대영 금융위 혁신기획단장은 “보이스피싱은 노력해도 당할 수 있는데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 돌리는 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금융회사가 인프라 운영자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하도록 대원칙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권 단장은 이를 신용카드가 부정사용 되면 카드사가 피해금액을 전액 보상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카드사가 부정사용 방지시스템(FDS)에 공을 들이는 것처럼, 금융회사도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한 예방노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다만 금융회사가 얼마나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금융권과 소비자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겠다”고만 밝혔다. 무조건 금융회사가 100% 배상하게 되면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금융회사에 보이스피싱 배상책임을 지우려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개정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연구용역과 입법예고, 공청회 등을 거쳐 올해 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일반 사기보다 처벌 무겁게”

은성수(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시연회'에서 관계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스1

은성수(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시연회'에서 관계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스1

과기정통부는 대포폰과 발신번호 조작 등을 예방·차단하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선불폰 비대면 개통 시 신용카드·인증서 등을 통해 본인확인을 철저히 하게 해 대포폰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로 했다. 또 단기간에 여러 회선이 한꺼번에 개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동통신 3사뿐 아니라 알뜰폰까지 통합 관리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이나 금융회사 번호사칭을 막기 위해 이들 기관이 보유한 모든 번호를 화이트리스트(번호조작 차단 목록)에 올린다는 계획도 밝혔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일반 사기범죄보다 높은 수준으로 강화한다. 대포통장을 팔거나 빌려주면 현재 징역 3년 또는 벌금 2000만원에 처하지만 이를 징역 5년, 벌금 3000만원으로 상향한다. 송금·인출 같은 단순조력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규정을 신설한다.

보이스피싱 십계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보이스피싱 십계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권대영 단장은 “보이스피싱이 발붙일 수 없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십계명을 준수하고 ‘지연이체서비스(최소 3시간 이상 지연)’를 신청해두는 것이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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