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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여윤동주(與尹同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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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나선형 역사발전론이란 게 있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면서 나사 모양의 소용돌이처럼 발전한다는 뜻이다. ‘역사의 반복’을 의심할만한 사건이 발생해도 그것이 과거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어디선가 흘려들었던 이 이론이 떠오른 건 점입가경인 여당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 때문이다. 뚜렷한 기시감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전례가 떠오르지 않아서다. 여당이 불편한 검찰총장을 쫓아낸 경우는 적지 않다. 김종빈 전 총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였던 강정구 교수에 대한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 이후 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일 사안으로 빚어진 파국이라 1년 가까이 구조적 대립이 이어지는 현 상황과는 차이를 보인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박근혜 정권에 밉보였던 채동욱 전 총장 사례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단번에 거꾸러뜨린 개인사 의혹과 달리 윤 총장 가족 관련 논란은 아직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윤 총장의 특수통 경력을 여당이 백안시하듯 김각영 전 총장은 공안 검사였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권의 미움을 받았다. 그가 직을 계속 수행할 듯 보이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현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해 더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여당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22일 열린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김 전 총장 사례의 재연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맷집’ 좋은 윤 총장이라도 임명권자의 직격탄은 버텨내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들의 기대를 깔끔하게 배반했다.

결국 여당은 앞으로도 한동안 더 윤 총장과 함께 가야 할 상황이 됐다. 오월동주(吳越同舟·적대국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들이 한배를 몰고 간다는 뜻)와 비슷한 여윤동주(與尹同舟) 상황이 된 셈이다. 어찌 보면 상황 자체가 사회 진보의 증명일 수 있다. 임기가 보장된 임명직 공무원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툭하면 쫓아냈던 과거와 비교해보면 말이다.

그러니 문 대통령의 지난 발언을 인용해 여당은 여당의 일을,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해나가면서 순항에 힘을 모으길 바라본다. 동승자를 방해하다가 배를 뒤집는 우는 범하지 말자는 얘기다.

박진석 사회에디터